본문 바로가기

삼성반도체이야기는 더 이상 Internet Explorer를 지원하지 않습니다. 최적의 환경을 위해 다른 웹브라우저 사용을 권장합니다.

[Behind the CHIP 시즌2] AI 에이전트가 불러온 AI 팩토리 시대의 개화

최근 인공지능 분야의 가장 주목할 만한 변화는 ‘AI 에이전트(AI Agent)’의 부상이다. AI 에이전트는 단순한 정보 처리 도구를 넘어, 스스로 목표를 설정하고 주변 상황을 인지한 뒤 계획을 수립해 과업을 수행하는 자율적 주체를 의미한다.

예를 들어, 단순히 이메일을 분류하는 데 그치지 않고, 특정 내용을 파악해 답장 초안을 작성하고, 사용자의 캘린더를 확인해 후속 미팅 일정을 제안하며, 나아가 고객관계관리(CRM) 시스템에 관련 내용을 자동 기록하는 복합 업무까지 수행할 수 있다. 이는 사용자의 의도를 깊이 이해하고 자율적으로 행동하는 지능형 비서의 등장을 예고한다. AI 에이전트는 소프트웨어에 국한되지 않는다. 공장의 생산 라인을 최적화하거나 복잡한 물류 시스템을 관리하는 물리적 로봇 형태로도 구현되며, 이는 AI가 다양한 산업 현장으로 확장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러한 변화의 배경에는 거대 언어 모델(LLM)의 고도화와 이를 뒷받침하는 막대한 컴퓨팅 파워의 발전이 있다. 엔비디아(NVIDIA)의 젠슨 황 CEO는 “미래에는 모든 기업과 개인이 각자의 목적에 맞는 AI 에이전트를 보유하게 될 것”이라고 단언한 바 있다. 수십억 개의 AI 에이전트가 활동하는 시대가 도래한다면, 이는 컴퓨팅 패러다임의 근본적인 전환을 불러올 것이다. 10억 명의 사용자가 각자의 AI 에이전트와 시간당 몇 차례만 상호작용하더라도, 전 세계적으로 하루 수조 회에 달하는 추론(inference) 연산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재의 데이터센터 구조는 이처럼 대규모의 실시간 추론 요청을 효율적으로 처리하도록 설계되지 않았다. 이처럼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는 연산 수요를 감당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인프라가 필수적이며, 그 해답이 바로 ‘AI 팩토리(AI Factory)’다.

AI 팩토리는 AI 시대에 최적화된 새로운 개념의 데이터센터다. 과거 데이터센터가 데이터를 저장하고 필요할 때 꺼내 쓰는 거대한 ‘디지털 창고’에 가까웠다면, AI 팩토리는 AI의 지능, 즉 ‘추론 토큰(Inference Token)’을 끊임없이 생산해내는 ‘지능 공장’으로 비유된다. 쉽게 말해, 기존 공장에서 제품을 만들 듯 AI 팩토리에서는 인공지능을 ‘생산’하는 것이다.

이 공장의 작동 방식을 들여다보면 개념이 더욱 명확해진다. 사용자의 질문, 실시간 데이터 스트림, 전기 등의 ‘원자재’가 투입되면, GPU와 NPU 등 AI 가속기로 구성된 ‘생산 설비’가 추론 연산을 수행한다. 그 결과 텍스트, 이미지, 코드, 로봇 제어 명령 등과 같은 ‘완제품(추론 토큰)’이 대량 생산된다. 이는 정적인 ‘저장된 데이터(Data-at-Rest)’를 관리하던 시대에서, 동적인 ‘움직이는 지능(Intelligence-in-Motion)’을 생성하고 유통하는 시대로 전환되고 있음을 의미한다. 이러한 변화는 AI 기술의 무게 중심이 ‘학습(Training)’에서 ‘추론(Inference)’ 단계로 빠르게 이동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지금까지는 방대한 데이터를 학습시켜 AI 모델을 구축하는 데 막대한 자원이 투입됐다. 하지만 이제는 잘 훈련된 AI 모델을 실제 서비스와 결합해, 끊임없이 가치를 창출하는 추론 단계의 중요성이 압도적으로 커지고 있다. 앞으로 자동차를 만든다고 가정해보면, 차량을 조립하는 기존 공장뿐 아니라 자율주행과 같은 AI 기능이 끊임없이 작동하도록 지원하는 AI 팩토리 또한 필수적인 인프라가 될 것이다.

물리적 공장이 대량 생산을 통해 산업 혁명을 견인했듯, AI 팩토리는 ‘지능의 대량 생산’을 통해 새로운 서비스와 비즈니스 모델을 창출하는 AI 혁명의 핵심 동력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AI 팩토리가 대량으로 생산하는 추론 토큰의 효율성과 안정성은 미래 AI 서비스의 경쟁력을 결정짓는 핵심 지표가 된다. 더 빠르고, 더 정밀하며, 더 경제적으로 추론 토큰을 생산할 수 있는 인프라를 갖춘 기업이 AI 시대를 주도하게 될 것이다.

이 과정에서 ‘학습’과 ‘추론’의 컴퓨팅 요구 차이는 반도체 산업의 지형 변화를 촉진한다. 학습은 막대한 자본을 투입해 주기적으로 수행되는 오프라인 과정인 반면, 추론은 수백만 명의 요청을 실시간으로 처리해야 하는 24시간 온라인 과정이다. 이로 인해 추론에 필요한 연산 총량은 학습보다 훨씬 방대하며, 이는 곧 저지연·고효율 추론에 최적화된 반도체 인프라에 대한 폭발적인 수요 증가로 이어진다.

이 지점에서 ‘고대역폭 메모리(HBM)’의 역할은 절대적이다. AI 모델의 성능을 좌우하는 수천억 개의 매개변수(파라미터)는 추론 시 빠르게 접근 가능해야 한다. 전통적인 메모리 구조의 대역폭 한계, 이른바 ‘메모리 벽(Memory Wall)’ 문제에 부딪히면, AI 가속기의 성능은 무용지물이 된다. HBM은 여러 개의 D램을 수직으로 적층해 데이터 이동 경로를 획기적으로 단축함으로써 이 문제를 해결한다. 이는 AI 가속기가 방대한 데이터를 병렬로, 지연 없이 처리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핵심 기술이다.

AI 팩토리의 영향력은 특정 기업의 데이터센터를 넘어, 국가 및 산업 전반의 경쟁력으로 확장되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소버린 AI(Sovereign AI)’의 부상이다. 이는 각국 정부와 기업이 자국의 데이터 주권을 보호하고, 자국의 언어·문화·법률에 최적화된 AI를 개발하며, 기술 종속에서 벗어나기 위해 독자적인 AI 인프라를 구축하려는 흐름이다. 엔비디아가 독일, 스페인, 이탈리아 등 유럽 각국과 협력해 현지 수요에 맞는 AI 인프라 및 팩토리 구축을 확대하는 것도 이러한 변화의 일환이다. 이처럼 제조, 금융, 의료 등 특정 산업에 최적화된 ‘산업용 AI 클라우드’가 확산되면서, 반도체 수요 또한 더욱 다변화되고 고도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러한 메가트렌드는 국내 AI 산업에도 중요한 기회를 제공한다. 최근 AI 에이전트 전문기업 와이즈넛(WISEnut)과 AI 반도체 팹리스 기업 퓨리오사AI(FuriosaAI)가 체결한 전략적 업무협약은 주목할 만한 사례이다. 양사는 통합형 ‘AI 에이전트 어플라이언스’를 공동 개발할 계획이다. 이는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가 결합된 일체형 솔루션으로, AI 도입에 어려움을 겪는 기업들에게 보다 손쉽고 빠른 해결책을 제공할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어플라이언스 모델의 확산은 시장 저변을 확대해, 공공·금융·이커머스를 넘어 제조, 의료, 국방, 물류 등 전방위 산업 전반으로 AI 도입을 가속화할 것이다.

AI 팩토리 트렌드는 반도체 기업에게 두 가지 측면에서 중요한 기회를 제공한다. 하나는 글로벌 빅테크 기업을 대상으로 HBM과 같은 최첨단 메모리 반도체를 공급할 수 있는 기회이고, 다른 하나는 팹리스 유망 기업들의 혁신적인 AI 반도체를 생산하는 파운드리 파트너로서의 역할을 수행하는 것이다.

다양한 AI 칩 설계 기업의 등장은 특정 기업에 대한 의존도를 낮추고, 시장을 더욱 건강하고 역동적으로 만든다. 이는 반도체 기업 입장에서 안정적인 수요처를 확보함과 동시에, 첨단 공정 기술에 대한 리더십을 강화할 수 있는 기회가 된다.

또한 산업 전반에서 AI 반도체 수요가 빠르게 증가하면서, 반도체 기업들은 보다 다양한 산업군에서 새로운 기회를 맞이할 것으로 보인다.

AI 에이전트가 촉발한 AI 팩토리 시대는 이제 막 개화하기 시작했다. 이는 단순한 기술 진보를 넘어, 컴퓨팅 인프라의 근본적인 혁신과 산업 지도의 재편을 의미한다. 그리고 이 거대한 변화의 중심에는 반도체가 존재한다.

AI 팩토리라는 ‘지능 공장’이 멈추지 않고 인류의 미래를 생산해내기 위해서는, 그 핵심 부품과 기반을 제공할 수 있는 인프라가 필요하다. 삼성전자가 앞으로 부품 공급자를 넘어, AI 시대의 인프라를 설계하고 지휘하는 ‘핵심 조력자(Enabler)’이자 ‘설계자(Architect)’로 자리매김하길 기대해 본다.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