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삼성반도체이야기는 더 이상 Internet Explorer를 지원하지 않습니다. 최적의 환경을 위해 다른 웹브라우저 사용을 권장합니다.

[Behind the CHIP 시즌2] 누구나 그림을 그리고 음악을 만드는 시대. 어디까지 가능할까?

2025년 봄, ‘지브리’가 전 세계를 뒤흔들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챗GPT가 그린 ‘지브리 스타일’ 이미지 생성 기능이 화제를 모은 것이다. 챗GPT에 새롭게 추가된 이미지 생성 기능은 다양한 스타일의 이미지를 생성할 수 있는데, 그중에서도 특히 지브리풍 이미지가 큰 인기를 끌었다. 많은 사람들이 SNS 프로필 사진을 지브리 스타일 이미지로 바꾸었고, 애니메이션에 관심이 없던 이들마저 ‘지브리’라는 이름에 익숙해질 정도로 지브리 스타일 열풍이 불었다.

이미지 생성 기능을 출시한 지 일주일 만에 총 1억 3,000만 명 이상의 이용자가 챗GPT로 7억 장 이상의 이미지를 생성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힘입어 챗GPT의 이용률도 폭증했다. 일주일 동안 앱을 사용한 주간 활성 이용자 수(WAU)는 5억 명을 돌파했으며, 이는 지난해 말 기준 3억 5,000만 명에서 약 30% 증가한 수치다.

같은 시기 유료 구독자 수도 450만 명이 증가해 누적 2,000만 명을 넘어섰다. 2022년 말 GPT-3.5 기반 챗GPT가 출시된 당시 5일 만에 100만 명의 사용자를 확보해 화제가 되었는데, 이번 이미지 생성 기능이 공개된 이후에는 불과 한 시간 동안 100만 명의 사용자가 새로 가입할 정도로 큰 반향을 일으켰다.

예상치 못한 인기에 놀란 것은 오픈AI의 CEO, 샘 알트먼(Sam Altman)도 마찬가지였다. 샘 알트먼은 자신의 SNS 계정을 통해 “지난 10년 동안 암을 치료할 수 있는 초지능을 개발하기 위해 노력했지만, 당시에는 아무도 신경 쓰지 않거나 반감을 드러냈다”는 말과 함께 “그런데 이미지 생성 기능 출시 하루 만에 사람들이 지브리 스타일 그림을 즐기고 있는 모습을 보게 됐다”며 허탈한 심경을 전하기도 했다.

또한 그는 이미지 생성 기능의 폭발적인 반응으로 인해 GPU가 ‘녹아내리고 있다’고 표현하며 서버 부담이 가중되고 있음을 언급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미지 생성 기능을 통해 유입되었는지 가늠할 수 있는 대목이다.

한편, ‘지브리 스타일’ 등 유명 작가나 애니메이션 스튜디오의 화풍을 모방한 이미지 생성이 유행하면서 대두된 논란도 있다. 바로 상업적 이용과 저작권 문제다.

일부 중고 거래 플랫폼에서 원하는 사진을 지브리풍 이미지로 유료 변환해 주겠다는 상업성 글까지 등장하기 시작했다. 챗GPT의 이미지 생성 기능을 사용하기 위해서는 유료 구독이 필요한데, 구독은 하고 싶지 않지만 몇 장의 이미지만 생성하고자 하는 이용자들을 대상으로 ‘장사’에 나선 것이다.

해당 서비스는 “사진을 보내주면 지브리 스타일로 만들어 준다”는 홍보 문구와 함께 이미지 당 500~3,000원 수준의 가격을 제시했다. 이에 따라 중고 거래 플랫폼 기업들은 논란을 방지하기 위해 AI 생성 이미지의 저작권 및 소유권에 대한 법적 기준이 명확하지 않다는 이유로, AI 생성 이미지의 거래를 제한한다고 발표했다.

지브리 스튜디오 등 원작자의 저작권 침해 논란도 뜨겁다. 이를 지적하는 이들이 많아지자, 오픈AI는 “프롬프트에 특정 아티스트 이름이 포함될 경우 해당 작가의 미학에 유사한 이미지를 생성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다만 저작권 침해 논란을 고려해 “현존 아티스트의 작풍을 기반으로 한 이미지 생성은 제한하는 시스템을 적용했다”고 밝혔다. 지브리 스타일 이미지 생성이 가능했던 이유에 대해서는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 개인이 아닌 스튜디오 전체의 작풍을 참고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AI의 콘텐츠 생성에 따른 사회적인 논란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지난해에는 유명 음악 프로듀서인 김형석 씨의 사례가 화제가 되었다. 그는 한 박람회의 주제가 공모전에서 심사위원으로 참가했는데, 이후 그가 올린 SNS 글이 주목을 받았다. 1등으로 선정한 곡이 완성도 높은 작품이라고 평가했지만, 며칠 후 주최 측으로부터 “AI로 만든 곡이라는데, 어떡하죠?”라는 연락을 받았다는 것이다. 상을 수여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그리고 앞으로 작곡가인 자신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을 담은 글이었다.

이때 사용된 툴은 ‘수노(SUNO)’라는 AI 작곡 프로그램이었다. 사용자가 곡의 내용을 설명하면 자동으로 가사를 써 주고, 스타일을 지정하면 2~3분짜리 분량의 노래를 두 곡씩 만들어 주는 서비스다. 누구나 무료로 사용할 수 있고, 유료 구독 시에는 상업적으로 사용해 수익을 창출할 수도 있다.

숙고 끝에, 주최 측은 해당 작품의 수상을 취소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AI 사용에 대한 제한 조건이 없었고, 미래세대를 위한 박람회의 주제와 부합하기 때문에 최종 선정에는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었다. 선정된 작품은 김형석 씨의 편곡을 거쳐 박람회 기간 사전 공연과 다양한 행사에서 활용되었다.

AI로 만든 음악은 이미 대중화되고 있다. AI 음악 공모전이 활발히 열리고 있고, 생성한 음악을 스트리밍 플랫폼에 등록하는 노하우도 널리 공유되고 있다. 국제저작권단체연맹(CISAC, International Confederation of Societies of Authors and Composers)의 연구에 따르면, 생성형 AI 음악의 시장 가치는 2028년 연간 160억 유로(약 24조 원), 향후 5년간 누적 400억 유로(약 59조 원)에 이를 것으로 예상된다. 2028년이면 생성형 AI 음악이 전체 스트리밍 플랫폼 수익의 약 20%를 차지할 것으로 전망하기도 했다.

그야말로 AI라는 도구만 있다면, 전문 지식 없이도 ‘딸깍’ 한 번에 80점짜리 결과물을 만들 수 있는 시대가 된 것이다. ‘창작의 대중화’가 현실화되고 있는 셈이다.

SF 작가 조안나 마체예브스카(Joanna Maciejewska)는 이러한 현상을 두고 쓴소리를 남기기도 했다.

“제가 미술과 글쓰기를 할 수 있도록 AI가 빨래, 설거지를 대신해 주기를 바라는 것이지, 제가 빨래와 설거지를 할 수 있도록 AI가 미술과 글쓰기를 대신해 주기를 바라는 것이 아닙니다.”

AI가 인간의 창작을 돕는 도구가 되기를 바랐지만, 실제로는 그 역할이 전도되고 있는 현실을 짚은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AI의 ‘창작’을 어떻게 바라보아야 할까? 앞서 AI가 누구나 80점짜리 결과물을 만들 수 있는 도구라고 언급했다. 이 80점짜리 결과물을 ‘정말 쓸 만한’ 85점, 90점짜리로 만드는 것은 인간의 몫이다. AI가 낸 결과물을 개선하고 발전시키려면 해당 분야에 대한 기초 지식이 필수적이다. ‘딸깍’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개인의 고유한 관점과 노력이 동반되어야 더 나은 결과물을 만들 수 있다.

앞으로 ‘일을 잘한다’는 것은 특정 분야에 대한 지식을 바탕으로 적절한 도구를 선택하고, 이를 효과적으로 조합해서 결과물을 만들어 내는 능력을 일컫게 될 것이다. 마치 유능한 음악 프로듀서가 음악의 주제와 방향성을 설정하고 다양한 소리를 믹싱해 최적의 결과를 만들어내듯이, 인간도 자기 일을 효과적으로 해내기 위해 다양한 도구를 오케스트라처럼 다루는 ‘오케스트레이션’ 능력이 중요해질 것이다. 우리는 이를 ‘프로듀서로서의 인간’이라 부를 수 있겠다.

AI가 창작까지 도맡아 할 수 있게 된 시대, 우리 모두가 ‘성공적인 프로듀서’로 설 수 있기를 바란다.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