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뮬레이션’이란 컴퓨터로 특정 현상을 모형화해 실제 상황을 예측하는 기술로, 반도체 기술 개발이나 제조 단계에서 개선 조건을 찾거나 오류를 잡아내는 역할을 합니다. 최근 반도체 회로 선폭이 점차 미세화 됨에 따라, 아주 작은 단위에서도 분석이 가능한 시뮬레이션 직무의 중요성이 부각되고 있는데요.
‘나는 신입사원입니다!’ 열한 번째 주인공은 삼성전자 반도체 DIT센터의 CSE팀(Computational Science & Engineering Team)에서 CAE(Computer Aided Engineering) 시뮬레이션을 담당하는 김상연 님입니다. CAE시뮬레이션이란 무엇이고, Ep.7에서 다뤘던 설비 시뮬레이션 담당자의 업무와 어떤 차이점이 있는지 함께 알아보겠습니다.
“삼성전자 반도체 안에서도 조직에 따라 시뮬레이션을 적용하는 대상이 조금씩 다릅니다. 얼마 전 소개됐던 설비 시뮬레이션 담당자가 설비 구조 및 열, 유동, 기류, 진동 등을 분석해 실제 제조 현장에서 발생할 수 있는 설비와 공정 기술 상의 오류를 잡아내는 역할을 했다면, 제가 속한 CAE시뮬레이션 직무는 반도체 제품과 관련한 공정, 소자, 소재 전반의 여러 물리적 현상을 다룹니다. 컴퓨터 프로그램으로 제품을 구현해 반도체 공정, 소자, 소재의 특성을 분석하고, 제품 개발 전 과정에서 성능이나 결함 개선 방향을 찾죠.”
“저는 그 중에서도 BEOL(Back end of the line)단의 ‘금속 배선 공정’ 시뮬레이션을 통해, 배선에 필요한 소재를 찾아내는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데요. 여기서 금속 배선은 반도체와 연결된 기기에 전기 신호를 전달하는 ‘전기 길’을 의미합니다. 다시 말해, 신호가 잘 전달될 수 있는 배선 소재를 찾는 시뮬레이션이죠.
이를 위해서는 배선 소재를 구성하는 원자나 분자를 컴퓨터로 구현하고 특성을 분석한 뒤, 그 결과값을 반도체 시뮬레이션에 인풋(input) 데이터로 활용해 특정 소재가 반도체에 쓰이기 적합한지 확인해야 합니다. 이후, 실제 제품 구조를 만든 후, 원하는 공정 레시피대로 시뮬레이션을 또 실행하죠.
이렇게 원자, 분자부터 나노 스케일까지 눈에 보이지 않는 단위의 시뮬레이션을 통해 가상으로 반도체 제품을 구현해 낸다는 점에서, 반도체의 ‘아바타’를 만드는 일이라고도 할 수 있죠.”
그렇다면, 상연 님이 삼성전자 반도체의 CAE시뮬레이션에 지원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예전부터 물질의 기본적인 원리와 기초 학문에 관심이 많았어요. ‘자연은 무엇으로 이루어져 있을까?’와 같은 궁금증이요. ‘물리학’을 전공하게 된 것도 같은 이유에서 였죠.
졸업 후에도 좀 더 근본적인 분야를 공부하고 싶어, 석사로 입자물리실험을 전공했는데요. 입자 검출 데이터를 분석하기 위해 리눅스 OS 프로그램을 다루기도 하고, 데이터 분석 코딩 과정을 배웠던 게 기억에 남아요. 이후, 유럽입자물리연구소(CERN)의 한국팀에서 대학원 생활을 하며, 물리학 기본 개념을 토대로 시뮬레이션 검증 과정을 심층적으로 파악할 수 있었습니다. 뒤이어 반도체 분야로 취업을 결심하고 나서 인턴으로 근무했던 나노종합기술원에서는 반도체 공정의 전체적인 과정을 경험할 수 있었고요.
취업을 결심했을 때 4차 산업혁명이 한창 뜨거운 이슈였는데요. 많은 기사들을 통해 반도체 분야의 미래가 밝다는 확신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반도체 업계의 시뮬레이션 직무는 우리가 눈으로 볼 수 없는 나노 스케일을 다루기 때문에, 제가 배운 입자물리학 지식과 프로그램 활용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최적의 직무라고 생각했어요.”
한편, 물리학도였던 상연 님은 입사 후 다양한 전공 지식을 쌓으며, 진정한 제너럴리스트로 거듭나고 있다고 하는데요.
“입사해보니 CAE시뮬레이션은 다양한 현상을 다루는 만큼, 다방면의 전공 지식이 필요했어요. 반도체 공정, 소자의 물리 현상을 분석하는 ‘물리적 지식’ 뿐 아니라 소재를 구성하는 원자를 연구하기 위해 ‘화학적 지식’, 시뮬레이션 프로그램을 다루기 위한 ‘컴퓨터 공학’과 ‘데이터 분석’까지 다양하게 공부해야 했죠.
이를 위해, 논문을 찾아보거나 프로그램을 배우며, 여러 전공 지식들을 배워 나갔습니다. 매일 새로운 내용을 마주해야 한다는 어려운 점이 있지만, 반도체 개발의 최전선에서 프론티어(frontier)로서 도전을 극복해 나간다는 점이 CAE시뮬레이션 직무의 매력이라고 생각해요.”
한편, 상연 님은 CSE팀이 조금 독특한 모습을 띄고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끊임없이 연구 개발이 이루어져야 하다 보니, 일반적인 회사의 모습보다는 학구적인 연구실에 더 가까워요. 직급과 상관 없이 모두의 의견이 존중 받습니다.
그리고 저희 팀에는 메모리, 로직(파운드리), AI 등 담당 기술에 따라 6개의 Tech Community가 있는데요. 기술별로 다양한 지식을 쌓도록 스터디가 활성화되어 있고, 그룹에 상관없이 원하는 스터디에 참여할 수 있어요. 덕분에 시뮬레이션 직무와 관련 있는 공정 스터디와 기계 해석 스터디에 참석해서 많은 도움을 얻고 있습니다.
아, 그리고 팀내 파트별로 다양한 외국인 임직원들이 있어요. 연구 개발 업무다 보니, 해외 박사 출신 비중이 높기 때문인데요. 사무실에서 영어로 커뮤니케이션하는 경우가 종종 있기 때문에 기본적인 영어 능력이 있는 분들이 업무에 더욱 빠르게 적응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됩니다.”
이어 그는 일과 삶의 균형을 장려하는 팀 문화와 함께 특별한 취미 생활도 공개했습니다.
“저희 팀에서는 열심히 일한 만큼, 워라밸을 보장하는 분위기가 조성되어 있어요. 기혼 선배님들의 경우, 자녀들과 시간을 보낼 수 있도록 장려하는 ‘육아 데이’도 있고, 적어도 월 2회는 조기 퇴근을 장려하는 ‘Empowerment Day’도 운영하고 있습니다. 덕분에 오후 2시에 퇴근할 때도 있죠. 그런데 이러한 제도가 아니더라도 워라밸을 존중하는 조직문화 때문에 늘 만족스럽게 지내고 있어요.
제가 조기 퇴근을 하거나 틈틈이 시간 날 때마다 찾는 곳이 있는데요. 바로, 제가 근무하는 DSR타워 사내 식당 앞에 있는 피아노입니다. 초등학교 때부터 취미로 피아노를 연주해 왔기 때문에, 종종 연주를 통해 저만의 힐링 타임을 갖곤 해요. 회사 생활 속 또 다른 ‘아티스트’ 부캐를 가꿔 나갈 수 있어 좋습니다. (웃음)
상연 님은 마지막으로 CAE시뮬레이션 직무를 꿈꾸는 취업준비생들에게 응원의 한 마디를 전했습니다.
“우선 본인이 관심 있는 전공 분야에 최선을 다하며 시야를 조금씩 넓혀 보세요. 다양한 최신 기술을 습득하고 경험하면 CAE시뮬레이션 업무에 필요한 다방면의 지식을 쌓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이건 저만의 꿀팁인데요. 학창 시절에 공부했던 전공 지식들을 나만의 용어로 정리해 보세요. 저는 ‘전공 지식 노트’를 만들어, 제가 이해할 수 있는 용어로 정리해 왔는데요. 필요할 때마다 언제든지 꺼내 볼 수 있는 든든한 ‘교과서’가 되었답니다! 입사 전부터 미리 전공 지식과 경험을 준비해 나간다면, 기회가 왔을 때 활용할 수 있는 큰 자산이 될 거예요.”
지금까지 원자 단위부터 나노 단위까지의 시뮬레이션을 통해, 반도체 제조 공정의 최적화에 기여하는 김상연 님의 이야기를 들어봤는데요. ‘나는 신입사원입니다’ 다음 시리즈의 주인공은 어떤 이야기를 들려줄지 기대해 주세요!
* 기사에 포함된 사진들은 방역 수칙을 준수하여 촬영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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