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내 캠페인을 통해 삼성전자 임직원들에게 강조되고 있는 슬로건 중, “혁신을 혁신하라”라는 문장이 있습니다. 하지만 간단명료한 이 문장에 대해서 많은 임직원들이 ‘어떤 것을 어떻게?’라는 물음을 갖기도 합니다.
이런 생각을 바꾸고 한계를 돌파하기 위해 삼성전자 S.LSI 노사협의회에서는 성악가 최승원 교수의 ‘Why Not?!’ 강의를 준비했습니다. 성악가 최승원 교수는 4세 때 소아마비 장애인이 되었지만, 피나는 노력을 통해서 세계 4대 성악 콩쿠르인 ‘메트로 폴리탄 오페라 콩쿠르’에서 동양인 최초로 우승을 했습니다. 이후 최승원 교수는 미국에서 연예인 못지 않은 유명세를 떨쳤다고 하는데요.
최근에 ‘세상을 바꾸는 시간 15분’, ‘강연 100℃’ 등 여러 프로그램에서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울리고 감동을 주었던 최고의 테너, 최승원 교수의 강연 현장을 지금부터 소개해 드립니다.
이번 명사 초청 강연은 삼성전자 기흥캠퍼스에서 진행되었습니다. 최승원 교수의 이야기를 알고 있었는지 강연장에는 많은 임직원들이 일찍부터 자리를 채우고 있었습니다.
‘Why Not?!’을 한글로 번역하자면, ‘왜 안돼?!’ 정도로 풀이할 수 있는데요. 이는 우리가 일상에서 흔히 쓰는 말이기도 합니다. 많은 임직원들이 강연을 듣기 전에 ‘최승원 교수가 전하는 Why Not?!은 어떤 경험과 힘든 상황 속에서 나온 말일까’하는 궁금증으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최승원 교수는 4세 전까지 동네에서 유명한 우량아였으며, 이만기씨의 뒤를 이을 씨름 선수라고 할 정도로 건강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갑자기 소아마비를 얻게 되면서 급격히 건강을 잃게 되었는데요.
소아마비가 온 후 가장 하고 싶었던 일은 누워 있는 상태에서 본인의 힘으로 엎드린 상태로 바꾸는 ‘뒤집기’였다고 합니다. 어머니는 ‘거지가 되지 않으려면 한글을 배워야 한다.’라며 학교에 보냈지만 최승원 교수는 결국 대학교까지 진학하게 되었습니다.
최승원 교수는 24살 때부터 본격적으로 노래를 하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대학교 재학 시절에는 합창단 정기공연에 서기 위한 오디션을 준비 중, 주변이들에게 오디션에 참가하지 말라는 말을 듣기도 했다고 합니다. 신체적인 문제로 오디션에 불합격되는 것이 심사에 문제가 될 것이고, 공연 입/퇴장 시 불편하며 악보를 손으로 쥐고 서있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었다고 합니다.
주변이들로부터 ‘장애인이라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는 말을 들은 뒤, 비교적 복지가 잘 되있다고 전해들은 미국으로 이민을 결심하게 됩니다.
미국 이민 후 장애인이 할 수 있는 직업으로 보석 감정사를 하려고 했지만, 이를 반대하던 아버지의 권유로 다시 성악을 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성악을 시작하면서 개인 레슨을 받으려고 만난 ‘헤리타 글라츠’ 선생님은 최승원 교수의 인생을 변화시켰다고 합니다.
글라츠 선생님은 항상 “Why Not?!”이라고 말하며, 그런 부분은 전혀 문제가 되지 않기 때문에 본인만 믿고 따라오라고 했습니다. 최승원 교수는 그 결과 ‘지금의 최승원’이 있을 수 있었다고 고백했습니다.
최승원 교수는 강연을 마무리 지으면서 가장 좋아하는 말 한마디를 강조하였습니다.
No one knows the future.
최승원 교수는 “자신의 미래가 불편한 다리와 손으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미래라고 생각했는데, Why not? 이라는 생각으로 살아 보니 다른 미래가 펼쳐지고 있다”라고 했습니다.
공연 중간 노래를 3곡 정도 불렀는데요, 특히 마지막 ‘My Way’를 부를 때는 최승원 교수의 지난 시절의 고통과 힘든 시절이 고스란히 느껴질 정도로 많은 울림을 주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매너리즘으로 새로운 것에 도전하는데 많은 망설임과 두려움을 갖고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상상하는 두려움과 공포는 현실에서 마주하게 되면 생각했던 것보다 작습니다. 도전에 대한 두려움을 극복하고 한계를 돌파하기 위해 오늘부터 한 단계씩 나아가면 어떨까요?
글. 임직원 리포터즈 이하영 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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