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냉전 시대를 상징했던 달 탐사는 최근 민간과 정부, 스타트업과 학계까지 다양한 주체가 참여하는 차세대 경쟁의 무대로 다시 주목받고 있다. 단순한 영토 확장이 아닌, 자원 확보와 기술 검증, 인류의 지속 가능한 우주 거주 가능성을 점검하는 테스트베드로서 달은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한 전략적 위치에 서 있다.
특히 극한 환경에서의 로버 주행, 지하 자원 탐사, 인공지능 기반의 자율주행 기술 등은 달 탐사를 통해 실증되고 있으며, 이는 향후 화성·소행성 등 심우주 탐사의 기반 기술로 이어질 전망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지난해 10월 열린 제75회 국제우주대회(IAC, International Astronautical Congress)는 단순한 기술 과시를 넘어, 달 탐사 기술과 이를 둘러싼 글로벌 협력의 미래를 가늠해볼 수 있는 장이었다.
이번 기사에서는 국제우주대회를 통해 엿볼 수 있었던 주요 국가 및 민간 기업의 우주 기술 개발 현황, 그리고 한국의 차세대 로버 기술과 우주 개발을 향한 실질적 행보를 소개하려고 한다.
각국이 선보인 차세대 달 탐사 로버
미국 벤츄리 아스트로랩(Venturi Astrolab)은 NASA 아르테미스(Artemis) 계획*의 일환으로 2026년 달 탐사를 목표로 개발 중인 탐사 로봇 ‘플렉스 로버(Flex Rover)’를 선보였다. 이 로봇은 극한 환경에서도 안정적인 주행이 가능하도록 초탄성 재질의 변형 가능한 바퀴를 탑재하고 있다.
*아르테미스 계획: NASA가 추진 중인 유인 달 탐사 프로그램으로, 2026년까지 인류를 다시 달에 보내고 장기적으로는 화성 탐사의 기반을 마련하는 것이 목표다.
플렉스 로버는 지구에서 원격으로 조종되거나, 달 표면에서 우주비행사에 의해 직접 운용될 수 있도록 설계되었다. 최대 적재 중량은 1,500kg에 달해 대규모 장비와 자재를 운송하는 데 큰 이점을 제공한다. 여기에 벤츄리 아스트로랩의 독자적인 배터리 기술을 활용해 -150°C 이하의 극한 온도에서 안정적인 작동이 가능하다.
특히 직경 930mm의 바퀴는 192개의 유연한 케이블로 구성된 변형 가능한 구조로, 최대 2톤의 무게를 지탱할 수 있다. 벤츄리 아스트로랩의 이 같은 기술력은 극한 우주 환경에서의 이동 수단 개발에 새로운 기준을 제시하고 있다.
중국의 ‘유투-2(Yutu-2) 로버’는 ‘창어-4호’와 함께 인류 최초로 달의 뒷면을 탐사하는 데 성공했다. 태양광을 주요 동력원으로 활용하면서도, 방사성 동위원소 기반의 열원(RHU)을 통해 혹한의 달밤 동안 내부 장비의 온도를 유지할 수 있도록 설계되었다. 또한 가시광선·근적외선 분광기(VNIS) 등을 탑재해 암석과 토양의 화학·광물 성분을 정밀 분석하고 있다.
유럽우주국(ESA)의 ‘로잘린드 프랭클린(Rosalind Franklin) 로버’는 이보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최대 2m 깊이의 지중 드릴을 장착하여 메탄과 유기물 탐사에 특화된 페이로드를 탑재할 예정이다. 민간뿐 아니라 여러 대륙의 기관들이 각기 다른 목표와 방식을 내세워 달뿐 아니라 화성과 같은 심우주 탐사 기술을 다각도로 발전시키고 있는 것이다.
인도우주연구기구(ISRO)도 찬드라얀-3(Chandrayaan-3) 임무를 통해 자율주행 기반의 탐사 로봇 ‘프라그얀 로버(Pragyan Rover)’를 공개했다. 이번 임무에는 고도 약 100m 상공에서 지형을 분석해 착륙 지점을 실시간으로 판단하는 영상 기반 착륙 알고리즘과 장애물을 스스로 회피하는 자율주행 기술 등이 적용되었다. 이로써 인도는 달에 탐사선을 착륙시킨 네 번째 국가가 되었으며, AI 기반의 달 탐사 기술을 입증하는 데 성공했다.
무인탐사연구소를 통해 살펴 본 한국의 혁신적 달 탐사 기술
한국의 무인탐사연구소(UEL)도 이 경쟁에서 빠질 수 없다. 무인탐사연구소는 두 개의 바퀴로 움직이는 소형 로봇 ‘스카라브(Scarab)’를 비롯해 8kg급 ‘거북이(Geobugi)’, 네 개의 바퀴를 장착한 20kg급 ‘해태(Haetae)’와 같은 소형 로버 라인업을 공개했다. 해당 로봇들은 각기 다른 크기와 목적을 가졌으며, 달의 험난한 지형을 효과적으로 탐사할 수 있도록 고안되었다.
특히 해태는 최대 3kg의 장비를 적재할 수 있어 달 탐사 임무에서 중요한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된다. 거북이는 가벼운 무게로 달의 험난한 지형에서 빠른 이동이 가능하다. 이 로봇들은 달 표면을 모사한 시뮬런트인 ‘KOHLS-1’을 활용한 실험을 통해 실제 환경과 유사한 조건에서 성능을 검증받고 있으며, 이를 통해 탐사 효율성과 신뢰성을 더욱 높이고 있다.
무인탐사연구소는 2040년까지 달 자원 채굴과 인류 거주지 건설이라는 장기 목표를 세우고, 이러한 비전을 바탕으로 한국이 우주 탐사 분야에서 주도적인 기술력을 확보할 수 있도록 기여하고 있다. 현재 국내에서 달 탐사용 로버 개발에 집중하는 유일한 민간 산업체인 무인탐사연구소의 가장 큰 목표는 바로 ‘기술의 검증’이다.
이들은 수년간 국제우주대회에 한국 대표로 참가하며, 글로벌 네트워크를 꾸준히 구축해 왔다. 무인탐사연구소는 “우주에 단순히 나가는 시대는 끝났고, 이제는 우주에서 무엇을 할 것인가가 중요한 시대”라며, “국제 무대 참가를 통해 한국의 우주탐사 기술을 알리고, 협력 가능성을 모색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실제로 오는 누리호 4차 발사에는 무인탐사연구소가 자체 개발한 로봇 제어기와 모터 드라이버가 큐브위성에 탑재될 예정이며, 이를 통해 우주 환경에서의 기술 검증이 이뤄질 계획이다.
소형 위성의 시대, 저궤도를 둘러싼 기회와 과제
달 탐사 기술이 주목받는 한편, 지구 저궤도에서는 소형 위성 시장의 급성장이 계속되고 있다. 2024년 한 해에만 약 2,800기의 소형 위성이 발사되었으며, 이는 전체 위성 발사의 97%를 차지한다는 분석도 있다. 2025년 5월 기준, 궤도에 머물고 있는 활성 위성 수는 약 1만 1,700기에 달하며, 이 중 상당수가 상업적 또는 과학적 목적에 활용되고 있다. 큐브위성을 포함한 소형 위성 제작 및 발사 비용이 과거보다 크게 낮아지면서, 스타트업은 물론 교육기관과 개인 연구자까지도 참여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된 점이 성장의 주요 요인으로 꼽힌다.
이 같은 민간 주도 우주 산업의 참여와 투자 확대는 우주 산업 전반의 성장세를 견인하고 있다. 실제로 글로벌 우주경제는 2023년 기준 약 6,300억 달러 규모로 평가되며, 세계경제포럼(WEF)은 2035년까지 1조 8,000억 달러 규모로 확대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2024년 3분기에는 전 세계 우주 스타트업이 약 19억 달러의 투자를 유치하며, 전년 동기 대비 18% 증가를 기록했다. 일부 국가가 우주 관련 예산을 축소하는 상황에서도, 정부와 민간의 유기적 협력이 오히려 새로운 혁신의 기반이 되고 있다는 평가다.
그러나 위성 수의 급증은 우주 환경 관리라는 새로운 과제도 동반하고 있다. 특히 궤도 잔해, 이른바 ‘우주 쓰레기’ 문제는 점점 심각해지고 있다. 2023년 이후 발사된 위성 가운데 일정 비율은 수명이 짧아 잔해화될 가능성이 높으며, 이로 인한 궤도 충돌 위험도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이를 해소하기 위한 먼지 제거 로봇 시장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고 있으나, 시장 규모나 성장률에 대해서는 아직 불확실한 점이 많다.
AI 분석으로 진화된 우주 식량 개발
우주 식량 개발 분야도 유망 분야로 떠올랐다. 코스모(Cosmo) 시리즈는 무려 30종의 곰팡이를 발효시켜 생성된 물질을 대량 건조해 파우더 형태로 만드는 것을 기본으로 시작한다. 이 원료를 바탕으로, 우주인과 올림픽 선수 등 수많은 사람들의 신체 건강 데이터를 AI로 분석해 최적의 우주용 식품을 개발한다. 국제우주대회 현장에서는 프로토타입 형태의 우주 식품이 공개되었으며, 젤(Gel), 음료(Drink), 바(Bar) 형태로 구성됐다.
코스모젤(CosmoGel)은 비타민, 미네랄, 아미노산 등 필수 영양소를 모두 함유한 젤 형태의 식품으로, 미세 중력 환경에서도 신체의 균형을 유지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도록 설계되었다. 코스모드링크(CosmoDrink)는 전해질이 풍부하게 함유된 음료로, 우주에서 수분과 전해질 균형 유지를 목표로 한다. 코스모바(CosmoBar)와 코스모미트(CosmoMeat)는 각각 항산화 성분과 식물성 단백질로 구성되어, 우주비행사의 건강 유지에 기여할 수 있는 혁신적인 식품이다.
이러한 제품들은 단순한 식량을 넘어, 우주 환경 속 인간의 생존과 건강을 과학적으로 뒷받침하는 필수적인 기술로 자리 잡고 있다. 미래 우주 탐사에서 이 같은 식량들이 인류의 생존을 어떻게 뒷받침할지 귀추가 주목된다.
우주 탐사의 새로운 시대를 맞이하며
우주 개발의 진정한 ‘혁신’은 어디서 비롯될까? 기술력과 자본의 경쟁일까, 아니면 다양한 주체 간의 협력과 책임 있는 규제일까. 작은 변형 바퀴 하나, 자율 주행이 가능한 소형 로버, AI 기반으로 설계된 우주 식량 하나가 오늘날 우주 탐사의 판도를 바꾸고 있다.
하지만 그 모든 혁신의 중심에는 반도체 기술이 자리한다. 발사체 제어, 인공위성, 탐사 로봇 등 다양한 우주 기술 발전을 위해서는 극한 환경에서도 안정적으로 작동할 수 있는 반도체가 필수적이다.
기술의 민주화가 가져온 기회와 책임을 어떻게 조화시킬지, 우리는 이제 ‘책임 있는 우주 여정’을 선택해야 한다. 새로운 영토 확장을 넘어, 지속 가능한 공존의 가치를 담아낼 때 비로소 우주는 우리 모두에게 열린 공간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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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칼럼은 외부 필진의 견해로, 삼성전자 DS부문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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