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속에 포함된 미세플라스틱과 과불화탄소화합물(PFAS)은 인체 건강에 점점 더 위협이 되고 있다. 일반적으로 지름 5mm 이하의 플라스틱을 미세플라스틱이라고 통칭하는데, 이 크기가 100나노미터(nm)보다 작아지면 나노플라스틱으로 분류된다.
대부분의 미세플라스틱은 장에서 흡수를 하지 못하고 배출되지만, 플라스틱 입자의 크기가 작아질수록 체내 흡수 가능성은 높아진다. 흡수된 일부 나노플라스틱 중 배출되지 못한 입자들은 혈액을 따라 돌다가 우리 몸 곳곳에 침투하게 된다. 미세플라스틱과 인지장애와의 높은 연관성은 이미 많은 연구에 의해 속속 밝혀지고 있으며, 미세플라스틱이 환경호르몬처럼 작용해 내분비계 교란을 초래할 수 있다는 것도 잘 알려진 사실이다.
또한 김 서림 방지 코팅 등에 사용되는 과불화탄소화합물은 한번 환경으로 흘러가면 영원히 분해되지 않기 때문에 ‘영원한 화합물’이라고도 불린다. 과불화탄소화합물은 테플론(PTFE)* 고분자를 합성할 때 사용되거나 산업 전반에서 광범위하게 활용되고 있지만, 이 물질 역시 내분비계에 영향을 끼친다. 이에 따라 플라스틱의 분해 및 재활용을 촉진하는 기술의 개발, 테플론을 대체하는 친환경 코팅 기술 개발이 큰 관심의 대상이다.
* 테플론(PTFE): 폴리테트라플루오로에틸렌(PTFE)으로 만든 비점착성 합성 고분자 물질로, 주로 조리기구 코팅과 산업용 부품에 사용된다.
화학 산업은 왜 ‘친환경’이 어려울까?
한편, 화학 산업은 환경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는 유기 용매, 중금속 등의 폐기물에서 자유로워지지 않는 이상 친환경 산업으로 자리매김하기 어려울 것이다. 제약 산업을 예로 들자면, 약물을 합성하는 과정은 여러 단계를 거칠 수밖에 없다. 이 과정에서 최종 산물에는 유독한 물질이 포함되지 않더라도, 합성 과정에서 유기 용매나 중금속의 사용이 불가피할 수 있다. 따라서 특정 타깃 화합물이 정해진 경우, 공정의 단순화, 친환경적인 반응 조건의 채택, 반응 수율의 향상, 분리 및 정제 단계의 최소화 등을 통해 화학 폐기물의 양을 줄이는 것이 필수적이다.
또한 사고를 실시간으로 감지하고 즉시 대응해 확산을 막는 ‘동적 감시체계(active surveillance system)’와 ‘포인트 오브 케어(point-of-care) 시스템’도 필요하다.
향후 우리나라를 포함한 대부분의 선진국은 초고령화 사회로 접어들게 되어 노인의 간병을 전담하는 직종이 사회 안전망 구축에 큰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 최근 급속하게 발전하고 있는 휴머노이드 로봇 기술은 노인 및 환자 돌봄 서비스 분야로의 적용 가능성도 높이고 있다.
다만, 휴머노이드 로봇이 인간을 본격적으로 대체하기 위해서는 로봇의 피부(skin)가 인간과 유사한 촉감과 온도를 갖추고, 반복적인 접힘과 눌림 등의 자극에도 구조적인 안정성을 유지해야 할 것이다. 이와 더불어, 돌봄 대상의 신체 이상 징후를 바로 감지할 수 있는 센서 역할까지 수행할 수 있어야 한다. 이러한 특성을 충족하는 휴머노이드 로봇은 화학 공장에서도 센싱, 구동, 그리고 포인트 오브 케어 기능을 모두 수행할 수 있어 활용 가능성이 높을 것으로 기대된다.
인공지능에 의한 화학 분야 기술 혁신
2024년 노벨화학상은 단백질의 구조를 예측하는 AI 프로그램과 지금까지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던 단백질을 합성하는 기술을 개발한 세 명의 연구자에게 돌아갔다. 모든 생명체는 체내에서 다양한 화합물을 합성하고 분해하며 살아가는데, 이 모든 과정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 바로 효소 단백질이다. 이러한 효소 단백질 구조를 정확히 아는 것이 모든 신약 개발의 출발점이 된다. 인체에는 적어도 7만 5천 개 이상의 효소 단백질이 존재한다. 단백질 구조를 밝혀내기 위해서는 단백질의 결정을 기르고, X-ray 회절 패턴을 얻은 뒤, 이 데이터를 기반으로 계산을 거쳐야 하는데 이 과정은 매우 오랜 시간이 소요된다.
아미노산들이 연결되어 형성되는 펩타이드는 나선형, 판상형 등 다양한 구조를 가지는데, 이들 구조가 3차원적으로 조립되어 전체 효소 단백질 구조를 만든다. 흥미롭게도, 특정 아미노산 서열은 오직 하나의 구조만을 형성하기 때문에, 원칙적으로는 아미노산 서열만 알아도 단백질 구조를 예측할 수 있다.
이러한 아이디어에 기반해 전 세계 과학자들은 ‘단백질 구조 예측 경기(CASP)*’에서 각자가 개발한 프로그램의 정확도를 겨뤄 왔다. 구글 딥마인드 ‘데미스 하사비스(Demis Hassabis)’ CEO는 2018년 대회에 처음 참가해, 약 60% 정도의 예측 정확도를 지닌 ‘알파폴드(AlphaFold)’라는 프로그램으로 다른 경쟁자들을 압도해 버렸다. 당시 기존 최고 수준의 프로그램 예측 정확도가 40% 정도였음을 고려하면, 알파폴드를 가히 생태계 파괴자라고 불러도 과언이 아니다. 이후 알파폴드의 성능은 더욱 향상되어, 현재는 90%가 넘는 정확도로 단백질 구조를 예측할 수 있다. 이는 곧, 아미노산 서열만으로도 단백질 구조를 예측할 수 있어, 신약 개발을 위해 더 이상 단백질 결정학의 도움을 받을 필요가 없어진 것을 의미한다.
* 단백질 구조 예측 경기(CASP): Critical Assessment of Structure Prediction의 약자로, 단백질 3차원 구조 예측 기술의 정확도와 성능을 겨루는 국제 대회
데미스 하사비스 CEO와 함께 노벨상을 수상한 ‘데이비드 베이커(David Baker)’ 미국 워싱턴대 교수는 최근 자연에는 존재하지 않는 아미노산 서열을 이용해서 탁월한 촉매 활성을 지닌 효소 단백질을 합성하는 데 성공했다. 이제는 자연을 뛰어넘는 성능의 인공 단백질을 합성하는 것이 더 이상 낯설지 않은 시대가 된 것이다.
한편, 미세플라스틱의 위협이 커지면서 플라스틱을 분해하는 미생물의 활용 가능성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 인공지능 기술을 이용하면, 이러한 미생물에 존재하는 플라스틱 분해 효소의 구조를 밝혀내고, 이를 능가하는 효소 단백질을 개발할 수 있을 것이다. 이 효소 단백질의 아미노산 서열을 만들 수 있는 염기 서열을 미생물 유전자에 넣고, 이 미생물을 배양하면 플라스틱 생분해 기술의 상용화를 앞당길 수 있을지도 모른다.
AI와 함께하는 친환경 화학의 미래
2022년 울산과학기술원(UNIST)의 ‘바르토슈 그쥐보프스키(Bartosz Grzybowski)’ 특훈교수(IBS 첨단연성물질 연구단 단장)는 화학 공정에서 나오는 폐기 부산물을 활용해 상용 약물을 합성하는 경로를 제안하는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이를 『네이처(Nature)』에 발표했다. 이 프로그램은 천연물 합성에서 최적의 경로를 찾아내는 데 활용될 수 있다.
또한, 그쥐보프스키 교수는 서울대 현택환 석좌교수(IBS 나노입자 연구단 단장)와의 협업을 통해, 수전해 수소 생산에서 산소 발생 반응에 쓰이는 전극 촉매 물질의 성능을 예측하고 발굴하는 AI 프로그램을 개발했다. 이 연구를 통해 새로운 페로브스카이트(perovskite)* 기반 산화물 전극 물질도 설계해냈다.
* 페로브스카이트(perovskite): 특정 결정 구조를 갖는 무기화합물로, 태양전지나 촉매 등 다양한 소재로 활용됨
테플론을 대체하는 코팅 소재의 개발에도 인공지능 기술이 적용될 수 있음은 너무나 자명하다. 다양한 분야에서 물질 개발 속도를 획기적으로 향상시키고 최적의 합성 경로를 사용하며 화학 폐기물의 양을 줄이는 것이 가능해진 것이다. 이제 화학은 보다 친환경 산업에 가까워지고 있다.
더 나아가, 휴머노이드 로봇의 화학 산업 적용 및 돌봄 서비스에서의 실제 상황 학습을 통해, 보다 안전한 화학 공정을 설계하고 실시간 포인트 오브 케어 관리까지 가능한 미래가 머지않았다. 로봇이 자체적으로 스킨 소재를 개발하고 보수까지 수행하는 미래가 펼쳐질 수도 있다.
가까운 미래를 조망해 보자면, 화학 기술과 로봇·인공지능 기술은 한 몸이 되어 친환경 산업으로 변모해 갈 것이다. 또한 사람이 직접 투입하기 힘든 원전 폐기물 처리나 독성 화학물질의 합성 및 분리·정제·처리 과정에서도 로봇과 인공지능은 필수적인 산업 기술 요소가 될 것이다.
하지만 좀 더 먼 미래까지 이러한 장밋빛 전망이 유효할지는 확신하기 어렵다. 어쩌면 인간이 완전히 배제된 화학 산업에서, 인간을 넘어서는 지능과 자아를 지닌 인공지능이 초래할 수 있는 문제에 대한 대비가 필요할지 모른다. 인간의 건강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는 화학 산업에 한해서는 인공지능의 능력을 억제하여 적용하는 것이 현명하다는 생각이 든다.
비하인드 더 칩 시즌2, 비하인드더칩시즌2, Behind the CHIP, 비하인드더칩, 비하인드 더 칩, 이광렬, 이광렬 교수
※ 본 칼럼은 외부 필진의 견해로, 삼성전자 DS부문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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