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에 개봉한 영화 <업그레이드>는 인공지능 칩을 통해 초인적 능력을 얻게 된 한 남자의 복수를 그린 액션 스릴러 작품이다. 영화 속 주인공 ‘그레이’는 정체불명의 괴한들에게 습격을 당해 연인을 잃고, 자신은 하반신 마비라는 참혹한 상황에 처하게 된다. 혼자 식사를 하거나 화장실에 가는 것조차 불가능해진 그에게 어느 날, 거대 테크 기업의 기술 개발자인 ‘에론’이 찾아와 솔깃한 제안을 한다. 바로 인공지능 시스템으로 인간의 운동 기능을 관리할 수 있는 ‘스템(STEM)’이라는 칩을 이식받으라는 것. 에론은 이 칩을 통해 그레이가 다시 걸을 수 있을 것이라 말하며, 그의 인생을 바꿀 기회를 내민다.
그레이는 모든 것을 잃은 끝에 결국 에론의 제안을 받아들이고 수술대에 오른다. 연인을 죽이고 자신을 이렇게 만든 괴한들에 대한 복수심, 다시 걷고 싶다는 본능적인 욕망, 그리고 ‘기술이 인간을 도울 수 있다’는 마지막 희망이 그를 설득한 것이다. 그렇게 그의 뇌에는 인공지능 칩 스템이 이식되었고, 그는 다시 온몸을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게 된다.
그런데 이 모든 이야기는 더 이상 공상과학 속의 상상이 아니다. 인간의 뇌와 컴퓨터를 직접 연결하는 ‘BCI(Brain-Computer Interface)’ 기술이 현실을 향해 빠르게 진화하고 있다. 특히, 이러한 BCI 기술의 기반에는 고성능 반도체 칩이 자리하고 있다. 뇌 신호를 정밀하게 측정하고, 이를 실시간으로 분석·처리하는 데 있어 반도체 기술은 필수적이다. 영화처럼 칩이 인간의 일상을 바꾸는 시대, 우리는 이미 그 출발선에 서 있다.
생각을 신호로, 신호를 행동으로
앞서 언급했듯, BCI, 즉 뇌-컴퓨터 인터페이스는 사람의 뇌와 컴퓨터를 직접 연결하는 기술이다. 그 원리를 간단히 설명하자면 이렇다.
우리가 어떤 생각을 하거나 움직임을 의도할 때, 두뇌에서는 고유의 뇌파가 발생한다. 이 뇌파는 전극이나 센서를 통해 측정할 수 있으며, BCI는 바로 이 신호를 감지하고 해석해 구체적인 명령으로 변환하는 기술이다.
예를 들어, 사용자가 ‘오른손을 움직이고 싶다’고 생각하면, 뇌는 그에 해당하는 신호를 발산한다. BCI 장치는 이러한 뇌 신호를 실시간으로 읽어 디지털 신호로 변환한 뒤, 이를 스마트폰, PC와 같은 외부 기기 또는 마우스, 키보드 등의 입력 장치에 전달한다. 결과적으로, 사용자는 로봇 팔을 움직이거나 생각만으로 스마트폰, PC를 조작할 수 있게 된다.
BCI 기술이 실제로 구현되기 위해서는 세 가지 핵심 과제가 있다. 첫째, 뇌에 안전하게 이식할 수 있을 만큼 장치를 작고 정교하게 만들어야 한다. 특히 침습형 BCI는 뇌에 전극이나 칩을 직접 삽입해야 하므로, 극도로 미세하고 유연한 설계가 요구된다. 실제로 뉴럴링크(Neuralink)와 같은 기업은 머리카락보다 가는 수백 가닥의 전극을 삽입할 수 있는 고정밀 수술 로봇을 개발 중이다. 이런 기술의 발전은 수술 부담은 최소화하고, 안정성을 높이는 데 기여하고 있다.
둘째, 뇌에서 발생하는 신호를 얼마나 정확하게 읽고 해석할 수 있는지가 관건이다. 뇌의 전기 신호는 매우 미세하고 복잡하다. 단순히 ‘움직이고 싶다’는 생각과 ‘멈추고 싶다’는 생각을 구분하는 것조차 고도의 정밀성과 뛰어난 노이즈 제거 기술이 필요하다. 최근에는 AI 기술의 발전 덕분에 뇌 신호 해석 기술이 매우 정교해지고 있다.
셋째, 해석한 명령을 외부 기계나 신체에 얼마나 정확하게 전달할 수 있는지가 중요하다. 아무리 신호를 잘 읽어도 외부 장치가 이를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면 실질적인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로봇 팔, 휠체어, 컴퓨터 커서 등 다양한 장치와 빠르고 안정적으로 연결하는 기술, 그리고 실시간 반응 속도와 오작동 방지 기술이 매우 중요하다.
뉴럴링크의 최신형 BCI 칩 ‘N1’
현재 BCI 기술을 구현하고 있는 대표적인 기업이 바로 일론 머스크의 뉴럴링크다. 2024년, 뉴럴링크는 자사의 뇌-컴퓨터 인터페이스 칩인 ‘N1’을 공개했다. 이 칩은 작고 정밀하며, 인간의 뇌와 기계를 직접 연결하는 침습형 BCI 기술의 최전선에 있다. 머리카락보다 얇은 64개의 전극 실(thread)이 뇌에 삽입되어, 1,000개 이상의 신경 신호 채널을 감지하고 분석할 수 있다.
칩의 크기는 직경 약 23mm로, 동전만 한 크기에 여러 기술이 집약돼 있다. N1 칩은 두피 아래에 삽입되기 때문에 외부로 드러나는 선이나 장치가 없으며, 데이터는 블루투스를 통해 최대 10m 거리 내의 기기와 무선으로 송수신된다.
삽입 과정은 뉴럴링크가 자체 개발한 수술 로봇을 통해 진행된다. 이 로봇은 수십 마이크로미터 굵기의 실 전극을 뇌의 정확한 위치에 자동으로 삽입할 수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뉴럴링크는 지난해 사지마비 남성에게 N1 칩을 이식한 사례를 공개했다. 그는 생각만으로 컴퓨터 커서를 움직이고, 이메일을 작성하며, 체스를 둘 수 있게 되었다. 그는 이를 기적이라고 표현하며, “마치 스타워즈의 포스(Force)를 사용하는 것 같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이 사례는 단순한 기술 시연을 넘어 인간이 뇌를 통해 컴퓨터와 직접 연결되어 실질적인 기능을 수행한 순간으로 평가된다. BCI 기술은 더 이상 공상과학의 영역이 아닌, 신체적 한계를 뛰어넘는 현실적인 도구로 발전하고 있다.
생각만으로 움직인 기계 팔: 브레인 게이트(BrainGate)의 도전
또 다른 BCI 기술 플랫폼을 살펴보자. 2012년, 미국 피츠버그대학 의료센터(UPMC) 연구진은 세상을 놀라게 할 임상 실험 결과를 발표했다.
주인공은 척수소뇌변성증을 앓고 있는 여성이었다. 연구진은 그의 대뇌 운동피질에 ‘유타 어레이(Utah Array)’라는 전극 두 개를 이식했다. 이 전극은 뇌에서 발생하는 미세한 전기 신호를 실시간으로 감지해 기계 팔로 전송함으로써 움직임을 구현했다. 그리고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손끝 하나 움직이지 못했던 그는 생각만으로 컵을 집고, 물건을 옮기고, 심지어 초콜릿을 들어 입에 넣었다. 그는 당시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10년 만에 제가 직접 먹은 초콜릿이에요”
브레인게이트(BrainGate)의 연구는 뉴럴링크의 사례와는 또 다른 의미를 지닌다. 뉴럴링크가 키보드나 마우스처럼 ‘화면 안의 세계’를 제어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면, 브레인게이트는 기계 팔이라는 물리적 장치를 제어했다는 점에서 뚜렷한 차이가 있다. 화면상의 입력을 넘어서 현실 공간에서 물체를 움직인 것이다.
이 연구는 신체를 자유롭게 움직일 수 없는 사람들에게 커다란 희망이 되었다. 머지않아, 우리는 BCI 기술을 통해 생각만으로 기계 팔과 기계 다리를 제어하며 자유롭게 움직이는 세상을 맞이할지도 모른다.
생각과 움직임을 연결하는 ‘디지털 브리지(Digital Bridge)’
영화 <업그레이드>처럼, 실제로 BCI를 통해 다시 걷게 된 남성의 사례도 있다. 자전거 사고로 하반신이 마비된 그는 2021년, 스위스 로잔공과대학 연구팀으로부터 ‘뇌·척수 인터페이스(BSI)’ 센서를 이식받았다. 뇌와 척수 사이의 신경물질 전달 시스템을 무선 연결하는 새로운 ‘디지털 브리지(Digital Bridge)’를 만들어준 것이다.
이렇게 뇌와 척수를 실시간으로 무선 연결해 ‘생각이 곧 움직임’이 되는 시스템이 완성됐다. 그 결과, 그는 스스로 서고, 걷고, 계단을 오르는데 성공했으며, 지속적인 훈련을 통해 BCI 장치를 꺼둔 상태에서도 일부 걷기가 가능해졌다.
연구진은 이를 통해 ‘디지털 브리지’가 단순 보조 기술이 아니라, 신경 회복을 유도하는 치료 기술로도 작용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뇌에서 척수로, 척수에서 다리로 이어지는 기존 신경 경로가 끊어졌지만, 디지털 신호로 우회 연결해 반복 사용하면서 뇌와 척수 사이에 새로운 신경 회로가 형성되기 시작한 것이다.
BCI가 바꿀 또다른 미래
오늘날의 BCI 기술은 아직 제한적이고 실험적인 의료 목적에 주로 사용되고 있다. 하지만 머지않은 미래, BCI 기술은 더욱 정밀해지고 소형화되며, 사람과 기계의 연결 속도 또한 지금보다 눈에 띄게 향상될 것으로 보인다. 단순히 의지를 전달하는 수준을 넘어, 기계와 인간 사이에 즉각적이고, 양방향적인 정보 교류가 가능한 시대가 우리 앞에 다가올 것이다.
생각만으로 스마트폰을 조작하고, 검색하고, 문서를 쓰는 시대. 외부 기기에 의존하지 않고, ‘의식’만으로 컴퓨터와 연결되는 인간. 그때가 되면, 인간의 사고 속도는 지금보다 훨씬 빨라지고, 뇌와 기술이 하나로 융합되는 새로운 진화의 길이 열리게 될 것이다.
영화 <업그레이드>의 주인공 그레이처럼, 인간은 기술을 통해 다시 한번 자신의 한계를 확장해 나가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 선택의 순간은, 머지않아 우리 모두에게 다가올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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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칼럼은 외부 필진의 견해로, 삼성전자 DS부문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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