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 건강연구소 홍기훈 직업환경의학 전문의가 알려 드리는 생활 속 올바른 환경안전 상식. 그 열두 번째 시간으로 중요 멸균제이자 페트병, 자동차 부동액 등의 기초 원료인 산화 에틸렌(Ethylene Oxide, C2H4O)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살면서 정기 건강 검진을 받아 본 경험이 있는 분이라면, 위 내시경 때문에 고통스러웠던 경험이 있을 것입니다. 일반적으로 입을 시작해서 위까지 들어가는 내시경을 견디는 과정이 상당히 힘들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위 내시경 검사는 위암을 조기 발견할 수 있기 때문에 꼭 받아야만 하는 중요한 검사입니다. 다행히 요즘에는 수면 유도제를 투여 받은 후, 검사를 받을 수 있어 예전보다는 덜 고통스러운 것 같습니다.
합병증 없이 안전하게 위 내시경을 받으려면 여러 조건들이 만족되어야 합니다. 그 중 하나는 위 내시경 기구가 깨끗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미국 질병관리본부에서 기술한 바에 따르면 위 내시경 검사는 약 180만 번의 검사에서 1번의 감염이 보고될 정도로 낮은 감염률을 보이고 있습니다. 이 같은 성과의 요인 중 하나는 위 내시경 소독에 적합한 효과적인 멸균제가 있기 때문입니다. 위 내시경뿐 아니라 기관지 내시경, 수술용 기구, 그 외 많은 의학 기구의 중요 멸균제로 쓰이고 있는 산화 에틸렌이 바로 그것입니다.
하지만 산화 에틸렌이 오늘날과 같이 많은 의학 기구의 멸균제로 널리 쓰이기 시작한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습니다. 1859년 프랑스 화학자 샤를 아돌프 뷔르츠(Charles Adolphe Wurtz, 1817-1884)에 의해서 처음으로 산화 에틸렌이 보고됐지만, 1928년에 이르러서야 살충제의 효과를 발견해 훈증제(fumigant, 휘발성 살충제)로서 광범위하게 쓰였습니다.
이어서 1940년대에 미국 육군에서 산화 에틸렌이 멸균제로 쓰였으며, 1950년대 비로소 병원에서 의학 기구의 멸균제로 사용되며 오늘날과 같이 보편화되기 시작했습니다.
한편, 현대인들이 일상 속에서 다양한 음료를 손쉽게 마실 수 있는 것에는 페트병이라는 발명품이 중요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페트병은 현대의 일상에서 너무나 당연하게 사용되는 물건이지만, 이 역시 쉽게 탄생된 것은 아닙니다.
페트병의 발명은 20세기 최고의 발명품이라 일컬어지는 플라스틱의 역사와 함께 했습니다. 1862년 영국의 화학자 알렉산더 파크스(Alexander Parkes, 1813-1890)는 식물에서 셀룰로스를 추출해 파케신(Parkesine)이라는 플라스틱을 처음으로 만들었으며, 1909년 벨기에 화학자 리오 베이클랜드(Leo Baekeland, 1863-1944)는 페놀과 포름알데히드를 반응시켜 베이크라이트(Bakelite)라는 첫 합성 플라스틱을 만드는 데 성공합니다.
이후 1941년 윈필드(John Rex Whinfield, 1901-1966)와 딕슨(James Tennant Dickson)은 산화 에틸렌으로부터 생산된 에틸렌 글리콜(Ethylene Glycol, C2H6O2)을 이용해 신소재 PET(Polyethylene Terephthalate)를 발명했습니다. 1973년, 너세니얼 와이어스(Nathaniel Wyeth, 1911-1990)는 이 PET를 이용해 10년 간의 연구 끝에 탄산 음료를 담아도 폭발하지 않는 페트병을 탄생시켰습니다.
추운 겨울, 물이 얼음으로 변하는 0℃ 이하로 기온이 떨어지게 되면 간혹 보일러 배관이 동파되는 경우가 발생하곤 합니다. 심지어 때로는 보일러뿐 아니라 수도나 자동차 엔진이 동파되기도 하는데, 이러한 동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필요한 것이 바로 부동액입니다.
부동액으로 많이 쓰이는 에틸렌 글리콜 60%와 물 40%를 섞으면 어는 점이 -45℃까지 내려가게 됩니다. 따라서 보일러와 자동차 엔진 등에 이 부동액을 사용하면 겨울에도 배관이 얼지 않는 효과를 볼 수 있는 것입니다. 특히 에틸렌 글리콜은 끊는 점이 197.3℃로 높기 때문에 이를 이용해 무더운 여름 자동차 엔진의 부동액으로 사용하기에도 적합합니다.
앞서 얘기한 멸균제와 페트병 그리고 부동액의 생산 과정은 ‘석유’에서부터 시작됩니다. 석유의 정제를 통해 기본 물질인 나프타(Naphtha)를 추출하고 이 나프타에서 에틸렌(Ethylene, C2H4)을 비롯해 프로필렌(Propylene, C3H6), 벤젠(Benzene, C6H6), 톨루엔(Toluene, C7H8), 자일렌(Xylene, C8H10) 등의 다양한 물질을 얻어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에틸렌에서 ‘산화 에틸렌’을 얻어낸 후, 이 산화 에틸렌을 물과 반응시켜 ‘에틸렌 글리콜’을 생산합니다. 그리고 이 에틸렌 글리콜에 테레프탈릭산(PTA, Terephthalic acid, C6H4(COOH)2)이나 디메틸 테레프탈레이트(Dimethyl terephthalate, C6H4(CO2CH3)2)를 반응시켜 페트병을 만들고, 에틸렌 글리콜과 물을 혼합해 부동액으로 사용합니다.
한 조사에 따르면 전 세계적으로 산화 에틸렌의 수요는 한 해에 약 20메가톤(20,000,000,000kg)에 이르고, 최근 10년간 5.6~5.7%의 증가율을 보였다고 합니다. 그리고 생산된 산화 에틸렌의 약 0.05%는 멸균제와 같이 직접적으로 사용되고, 나머지 99.95%는 합성 화학 제품의 기초 원료로 간접적으로 사용되며 이 중 65%는 에틸렌 글리콜을 생산하는데 사용됩니다.
이처럼 광범위하게 산화 에틸렌이 사용되고 있지만 산화 에틸렌은 국제암연구소에서 지정한 1급 발암 물질입니다. 인류에게 암을 유발시키는 것은 논란의 여지가 있지만, 동물들과 인체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해 혈액암의 1급 발암 물질로 지정되었습니다.
또한 산화 에틸렌은 짧은 시간 노출될 경우에 눈, 코, 피부 및 폐를 자극하고 심한 경우에 수포, 화상 등을 일으킬 수 있습니다. 또한 장시간 노출될 경우 중추신경계 억제, 알레르기 반응 등을 발생시킬 수 있습니다.
때문에 산화 에틸렌에 노출되지 않도록 각별히 주의해야합니다. 특히 전 세계적으로 많은 의료 기구와 물품을 소독하는 업무에 종사하고 있는 근로자들과 산화 에틸렌을 이용해 화학 제품을 생산하는 공정의 근로자들은 더욱 유념해야 하겠습니다.
국내에서도 산업안전보건법에 의해 8시간 근무환경에서 근로자가 산화 에틸렌에 1ppm 이상 노출되지 않도록 노력하고 있습니다. 2009년 안전보건공단의 한 조사에 따르면, 작업환경 측정 결과 국내 의료용기기 제조업의 살균 공정에서는 0.59ppm, 기타 기초 유기화합물 제조업 반응 공정에서 0.16ppm, 그리고 일반 병원 살균 공정에서는 0.13ppm으로 조사된 바 있습니다.
한편 일반 환경에서도 산화 에틸렌에 노출될 수 있습니다. 바로 담배의 수많은 유해 물질 중 산화 에틸렌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국제암연구소 보고서에 따르면, 담배 1개비 연기에 약 7mg의 산화 에틸렌이 포함되어 있다고 합니다. 일상 생활 속에서 산화 에틸렌에 노출되지 않기 위해서는 금연과 함께 간접 흡연에도 노출되지 않도록 해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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