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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요한 것은 속도보다 방향, 40년 열정으로 돌가루 그림 그리는 우리 아버지를 소개합니다!

돌마다 다른 색깔의 가루가 나온다는 사실을 아시나요? 열정 하나만으로 40여 년의 세월 동안 한 우물을 파온 돌가루 그림 작가가 있습니다. 바로 삼성전자 DS부문 메모리 제조센터에서 근무하는 예리나 사원의 아버지 예종현 씨인데요. 쌀알 그림에서 시작된 예종현 씨의 돌가루 그림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메모리 제조센터에서 근무하는 예리나 사원의 아버지 예종현 씨

■ 곡식으로 만든 모자이크에서 시작된 예술

쌀

지금으로부터 40여 년 전, 스무 살의 청년이었던 예종현 씨는 회사 식당 벽에 붙어 있는 모자이크를 보게 됩니다. 어느 것 하나 예사로 넘기지 않던 이 청년은 모자이크로 된 그림을 세심히 관찰하게 되었는데요. 이 모자이크는 특이하게도 곡물로 만들어진 것이었습니다.

예종현 씨는 곡물로 만들어진 모자이크를 보고 ‘아! 나도 한 번 만들어 봐야겠다!’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한 달간에 걸쳐 곡식으로 작품을 완성했는데요. 이 작품은 집에 찾아오신 친척 어른에게 선물로 드리게 되었습니다. 1년 후, 예종현 씨 집으로 한 통의 전화가 걸려 왔습니다. 바로, 친척 어른에게서 걸려 온 전화인데요. 수화기 너머로 곡식으로 만든 작품에 벌레가 기어다녀서 버리게 되었다는 말을 전해 들었습니다. 그렇게 예종현 씨의 첫 작품은 기억 속으로 사라졌고, 그는 곡식으로 작품을 만드는 것을 멈추게 됩니다.

비가 내리던 어느 날, 집으로 향하는 발걸음을 재촉하던 예종현 씨는 돌부리에 걸려서 넘어지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 때문에 발가락을 다쳐서 오랫동안 고생했지만, 그 사고는 새로운 작품을 만들 수 있는 시작점이 되어주었다고 전합니다.

돌가루 그림 작가 예종현 씨

돌가루 그림 작가 예종현 씨
“‘다른 사람도 걸려 넘어질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집에 가서 쇠망치를 들고 나와 돌부리를 깼습니다. 어떻게 보면 길가에 있는 평범한 돌인데요. 비를 맞은 돌 조각과 가루 색깔들이 그렇게 신기하고 오묘해 보일 수가 없었어요. 그 때 돌부리에 걸려 넘어졌던 것이 돌가루 그림을 그리게 된 계기가 되었습니다. “

돌

집에 와서 가만히 누워 있는데, 갑자기 ‘돌가루로 그림을 그리면 평생 가도 벌레는 안 생기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예종현 씨는 집에 있는 쇠 절구를 이용해 돌가루를 빻았습니다. 돌에서는 각각의 돌들의 모양이 다 다르듯 다양한 색깔과 질감의 가루가 나왔습니다. 그 이후로 예종현 씨는 시간이 날 때마다 주변 냇가에 가서 다양한 돌들을 주워다 빻기 시작했고, 이렇게 얻은 무궁무진한 돌가루의 색깔들은 돌가루를 이용한 새로운 표현법에 도전할 수 있는 밑바탕이 되어주었습니다.

■ 장마가 앗아간 돌가루 그림 50여 점, 그리고 꿈

호기심으로 시작된 예종현 씨의 곡식 그림은 쌀알만한 돌 부스러기를 핀셋으로 하나하나 옮겨 모자이크를 만드는 형태로 변경되었습니다. 한 조각 한 조각씩 돌 조각을 옮기는 것 역시 고난도의 집중력과 많은 시간이 필요로 하는 고된 작업이었지만, 예종현 씨에게 중요한 것은 속도보다 방향이었습니다. 이후 돌 조각을 붙이는 것에서 돌가루를 이용한 표현법으로 방법이 바뀌었지만, 예종현 씨의 철학은 그의 작품 속에 살아 있습니다.

돌가루 그림 작가 예종현 씨

돌가루 그림 작가 예종현 씨
“계속 하다 보니 이 길에 집중해 무언가 해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40여 년 전에는 이 방면에 유명한 사람이 없었거든요. 때마침, 올림픽을 기념하며 열린 전국 공예품 경진대회에 ‘백두산 천지’라는 작품을 출품해 최종 7작품에 선정, 대상 후보로 인정받기도 했습니다. 세상에 있는 공예들이 한자리에 모인 자리였는데요. 아쉽게도 대상을 받지 못했습니다. 그 후 대중과 함께 호흡하고 인정받고 싶다는 생각에 개인전을 준비하게 되었죠.”

본격적으로 돌가루 그림을 그리기 위해 작업실이 필요했습니다. 넉넉하지 않은 살림이라 동네의 한 건물 지하에 작업실을 얻어 개인전을 준비해 나갔습니다. 마음에 들지 않는 작품은 완성 직전이라도 과감히 버리고, 자신의 성에 찰 때까지 작업을 해 돌가루 그림 작품의 완성도를 높여 나갔다는 예종현 씨.

심혈을 기울인 작품들은 하나하나 모습을 갖추기 시작했고, 그렇게 완성된 작품이 50여 점에 다다랐을 때의 일이었습니다. 때는 장마철이었는데요. 개인적인 사정으로 작업실에 가지 못해 열흘 만에 작업실 문을 열고 들어가니 퀴퀴한 냄새가 났습니다. 한 점도 빠짐없이 곰팡이가 슬은 것입니다. 예종현 씨는 그 때만 생각하면 지금도 말을 잇지 못할 정도로 속상합니다. 평소 무뚝뚝해 감정 표현을 많이 하지 않았던 예리나 사원도 안타까운 마음을 전합니다.

예리나 사원 예종현 작가

삼성전자 DS부문 메모리 제조센터 예리나 사원
“한 번 작업을 시작하시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밤새워 작업에 몰두하셨어요. 지하실에서 나오지도 않으시며 열심히 작업하셨는데요. 작품들이 전부 망가졌을 때에는 표현을 못 해서 말씀은 못 드렸지만, 저도 정말 속상했어요. 제가 봤을 때 정말 멋진 작품인데도 아빠가 보시기엔 만족스럽지 않으셨는지 망치로 부숴 버린 작품도 정말 많거든요. ‘저렇게 힘들게 하지 않으시면 좋겠다’는 바람이 있지만, 한 가지에 오랜 시간 열정을 갖고 임하시는 모습이 너무 자랑스럽습니다.”

누구에게 배운 것 하나 없이 열정 하나로 돌가루 그림에 대한 길을 개척하며 외길 인생을 걸어온 예종현 씨의 작품 세계는 가족들의 따뜻한 응원이 있어 더욱 빛납니다.

■ 가슴 속에 품은 아버지의 꿈 

▲ 예종현 씨 집 거실 벽에 걸려 있는 돌가루 그림
▲ 예종현 씨 집 거실 벽에 걸려 있는 돌가루 그림

비가 온 후 산꼭대기가 바다의 섬처럼 보이는 운해의 신비로움에 반해 산수화를 즐겨 그린다는 예종현씨. 그는 남녀노소 누구나가 부담 없이 보고 이해하기 쉬운 작품이 좋은 작품이라고 말합니다.

돌가루 그림 작가 예종현 씨

돌가루 그림 작가 예종현 씨
“제가 산을 참 좋아하는데요. 그래서인지 동네의 뒷산이라 할지라도 비온 후에는 참 특별하게 느껴지는 것 같습니다. 산을 치감고 올라오는 살아있는 구름을 묘사하려고 지금도 노력하고 있습니다. 누구나 이해할 수 있을 정도로 쉽고, 작품을 통해 저와 교류할 수 있는 작품, 즉 살아서 꿈틀대는 작품을 만들고 싶습니다.”

예종현 씨는 지금은 다리를 다쳐 작품 활동을 잠시 쉬고 있지만, 다 나으면 다시 작품 활동을 재개해 대중에게 작품을 선보이고 싶다는 소망도 가슴 속에 품고 있습니다. 개인전을 열고, 다른 이들에게 손가락질 안 받는 작품을 만들고, 가족이 화목하고 건강하게 지내는 것이 예리나 사원 아버지인 예종현 씨의 꿈입니다. 아버지의 꿈은 딸에게 살아가는 힘이 되어주기도 합니다.

부녀

삼성전자 DS부문 메모리 제조센터 예리나 사원
“회사 생활 10년차인데요. 가끔 나태해지고 고비가 찾아오기도 하는 것 같아요. 예전에 힘들었던 시기가 있었는데요. 집에 와서 아버지가 그림 그리시는 모습을 보고 많은 것을 느낀 적이 있어요. 저희 아버지는 그림 그릴 때 눈빛이 달라지시고, 잠시도 쉬지 않고 그림을 그리시거든요. 돌가루로 그림을 그리는 작업이 분명 고된 작업일 텐데 힘들다는 내색도 안하고 열심히 하시니까, ‘나도 열심히 살아야겠구나’라는 생각을 했어요. 저도 하루하루 열심히 생활하면서 작업실도 만들어 드리고, 기회가 되면 전시회도 열어 드리고 싶습니다. 또, 아버지의 말씀처럼 건강이 최고이니, 저도 가족들도 모두 건강하게 지내면 좋겠습니다.”

지금까지 삼성전자 DS부문 메모리 제조센터에서 근무하는 예리나 사원과 아버지인 예종현 씨의 돌가루 그림 이야기를 전해드렸습니다. 열정 하나로 40여 년의 세월 동안 외길 인생을 걸어온 예종현 씨에게 박수를 보내고 싶습니다. 
여러분의 가슴 속에는 무엇에 대한 열정이 꿈틀대고 있나요? 가슴 속 열정이란 씨앗으로 행복과 보람을 느낄 수 있는 봄날을 보내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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