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과 교감할 수 있도록 주어진 오감(五感)은 우리에게 축복과 같은 존재입니다. 시각, 청각, 후각, 미각, 촉각 등 5가지 감각 중 어느 하나 중요하지 않은 요소가 없는데요, 이 감각을 현재의 과학기술로 재현할 수 있을까요?
바이오센서 분야의 권위자인 서울대학교 화학생물공학부 박태현 교수는 시각과 청각, 그리고 촉각을 재현해 낸 기술은 이미 우리 주변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고 말합니다. 시각을 재현한 카메라, 청각을 재현한 마이크/오디오, 촉각을 재현한 다양한 터치 센서 등이 바로 그 것인데요, 하지만 후각과 미각의 재현은 아직 연구 단계에 있다고 합니다.
박태현 교수와 그의 연구팀은 후각과 미각에 대한 연구를 진행하며, 그에 대한 성과도 꾸준히 발표하고 있는데요, 지난 2월 19일에는 삼성전자 DS부문 기흥캠퍼스를 찾아 삼성전자 임직원과 함께 연구 결과와 진행과정을 나누는 특별한 자리(System LSI Colloquium)를 가졌습니다. 삼성 나노시티에서 열린 2013년 콜로키움(Colloquium)의 첫 번째 강연자, 서울대학교 박태현 교수와 함께 한 현장으로 초대합니다.
※ System LSI Colloquium(콜로키움) 삼성전자 System LSI 사업부에서 임직원들을 대상으로 정기적으로 개최하고 있는 미래 유망기술 강연/토론회로, 임직원들의 자기계발과 미래 기술 선도를 위해 각 분야의 전문가를 초청해 진행하는 행사이다. |
박태현 교수와 함께 한 콜로키움의 주제는 ‘신비의 감각: 후각과 미각, 그리고 바이오 전자코와 바이오 전자혀’입니다. 인간의 오감 중 시각과 청각에 대한 연구는 비교적 많은 진행되었지만, 사람과 똑같이 냄새를 맡거나 맛을 보는 장치에 관한 연구는 아직 낮은 수준이라고 합니다.
기존 연구는 단순히 냄새와 맛을 구분하는 수준이었지만, 박태현 교수팀이 연구 중인 기술은 인간의 후각과 미각 수용체(receptor)를 사용함으로써, 인공적으로 인간의 후각과 미각에 가장 가깝게 재현하는 데 역점을 두고 있습니다.
앞서 언급한대로, 지금까지 우리는 시각과 청각, 촉각과 관련해 여러 가지 기기를 발명해 사용해왔습니다. TV나 녹음기 등은 빛이나 소리를 저장 및 재생하며 인간의 시각과 청각을 구현합니다. 최근에는 태블릿PC나 스마트TV 등에서 촉각을 도입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터치 스크린이 한 예이죠.
하지만, 냄새나 맛을 인지하거나 저장해주는 기기는 아직까지 없습니다. 시각, 청각, 촉각이 물리적 인자를 인지하는 것과 달리 후각과 미각은 화학적 인자를 인지하기 때문에 연구가 어렵다고 하는데요,
특히, 후각은 미각보다 더욱 복잡하여 신비에 싸여 있는 감각이라고 합니다. 인간은 0.01ppt(part per trillion) 정도의 민감한 후각적 능력을 가지고 있는데요, 이는 탁구공으로 가득 찬 잠실야구장이 10만 개 있다고 가정할 때, 그 중 빨간 탁구공 하나를 찾아낼 수 있는 정도의 능력입니다. 예민한 만큼 인간의 후각을 인공적으로 재현한다는 것은 어려운 과제겠죠?
박태현 교수팀이 연구 중인 ‘바이오 전자코’에 관한 설명은 매우 흥미로웠습니다. 인간의 후각은 오감 중 뇌와 가장 가까운 기관으로 그만큼 똑똑하고 예민한 감각이라고 합니다. 시각이 빛의 삼원색을 느끼는 3개의 수용체만으로 모든 색깔을 구별해내는 것과 달리, 후각은 냄새 분자와 결합하는 수용체 유전자가 1,000개에 이른다고 합니다.
우리가 냄새를 맡게 되는 과정은, 냄새 분자가 콧속의 후각 상피세포로 들어와 후각 수용체와 결합하면서 감각신경을 흥분시키고, 이 때 발생한 전기신호가 뇌로 전달되며 냄새를 느끼게 됩니다. 또 뇌는 이 냄새의 패턴을 저장했다가 나중에 같은 냄새가 나면 기억을 되살리는데요, 같은 냄새는 같은 후각 수용체와 신경세포, 신경줄을 통해 모아지기 때문에 같은 냄새로 기억이 되는 것이죠. 우리가 그윽한 커피 한 잔이나 붉은 색의 포도주 한 잔에 기분이 편안해지는 것은 바로 ‘향기의 힘’ 때문이죠.
지금까지 알려진 1,000개의 수용체 유전자 중 실제로 냄새를 맡는 활성을 가지고 있는 수용체는 약 390개 정도인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한 개의 후각 수용체가 여러 종류의 냄새를 담당한다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인간이 1만 가지의 냄새를 맡을 수 있다고 예측된다고 합니다. 박태현 교수팀이 이런 인간의 후각 매커니즘을 인공적으로 재현하기 위해 핵심 유전자를 인간 세포에서 발현시켜 ‘냄새 맡는 단백질’을 생산한 뒤 냄새 분자에 반응하는 정도를 측정하는 것이 ‘바이오 전자코’의 원리입니다.
만약 이 ‘바이오 전자코’가 상용화된다면 어떻게 될까요? 향수나 와인, 커피 등 향취 산업에 응용해 원하는 향기를 만들어 주는 향수 제조기를 만들 수도 있고, 의료용으로 발전시켜 환자의 날숨 냄새를 분석해 질병을 진단할 수도 있습니다. 혹은 박태현 교수팀이 진행했던 연구와 같이 음식물의 부패, 신선도를 측정해서 음식의 냄새를 맡고 신선도를 확인하는 냉장고를 개발할 수도 있습니다. 폭발물 및 독극물 감지, 마약 검색 등 독성물질의 냄새나 마약 냄새를 감지하는 센서가 개발되거나, 후각장애를 가진 사람들을 위해서까지 다양한 분야에 폭넓게 활용이 가능하답니다.
인간은 혀를 통해 미각을 느끼는데요, 혀의 각 부분에서 단맛, 신맛, 짠맛, 신맛, 맛있는 맛(Umami) 등 5가지 맛을 느낍니다. 이 중 박태현 교수팀은 단 맛(sweet), 쓴 맛(bitter), 그리고 우리가 맛있다고 느끼는 감칠맛(Umami) 등 3가지 맛에 대한 실험을 진행했다고 합니다.
박태현 교수팀이 연구하는 ‘바이오 전자혀(Electronic Tongue)’는 전자 센서를 통해 액체의 물질 분포를 분석하는 장치인데요. 전기가 흐르는 고분자 튜브 표면에 혀에서 쓴맛을 감지하는 미각 단백질을 붙여 이 단백질에 쓴맛 분자가 결합하면, 미세한 전류 변화가 생기게 되는데 이 전류 변화를 감지해 맛을 구분 합니다. 그 결과, 전자혀는 바닷물 염분 농도의 500조 분의 1에 불과한 쓴맛까지 감지해냈고, 쓴맛 분자가 단맛이나 감칠맛 내는 분자와 같이 섞여 있어도 어김없이 구분해 냈다고 합니다. 이 놀라운 연구 성과는 美 화학회가 발간하는 국제 학술지 Nano letters 최신호에 게재되기도 했습니다.
이러한 전자혀가 상용화가 된다면 식품이나 음료 품질 검사에 사람을 대체해 비용과 시간, 그리고 맛을 보기 위해 고생해 온 사람의 고통(?!)을 크게 줄일 수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또, 사람의 혀로 맛볼 수 없는 호르몬 농도를 분석할 수 있고, 소변 내 코카인 성분 유무 등을 알려고 할 때 유용하게 쓰일 수 있다고 합니다.
박태현 교수의 열정적인 강의만큼 강의가 끝난 후에도 많은 질문들이 쏟아졌습니다. 삼성전자의 임직원답게 전자혀와 전자코를 반도체에 도입하는 방향과, TV, 전화기 등 각종 전자제품에 어떤 변화를 가지고 올 수 있을지 등 활발한 토론이 진행됐습니다.
바이오 전자코와 전자혀가 사람의 코와 혀를 대신해 많은 일들을 해낼 수 있는 날이 그리 멀지 않은 것 같습니다. 과학기술의 획기적인 발전으로 전자코와 전자혀까지 현실화되는 지금, 앞으로의 더 놀라운 일들 기대해 볼만하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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