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의 반도체 사업 성공사례는 현대 산업사에 기적 중 하나로 평가 받고 있습니다. 그 뒤에는 직접 반도체를 만들어낸 황금의 손, 오퍼레이터 직원들이 있는데요, 지금도 ‘반도체’ 세 글자만 보면 가슴이 뜨거워지는 그들, 반도체를 사랑한 여인들을 소개합니다.
1984년 4월 삼성전자 메모리반도체 사업이 걸음마를 뗄 무렵, 서애정씨는 삼성반도체통신 총무과 과장님으로부터 한 통의 전화를 받았습니다. “애정아, 기흥에 반도체 라인이 들어서는데 같이 일 좀 하자” 부천 한국반도체(이후 삼성반도체통신 부천공장)에서 함께 일했던 선배의 제안을 흔쾌히 허락했습니다. “그럴까요? 놀면 뭐 하겠어요, 하하! 아? 그런데 기흥이 어디예요??”
1980년대 기흥캠퍼스는 지금과는 달리 차로 한참을 달려도 사람 하나 보이지 않는 그야말로 ‘깡촌’이었습니다. 그 곳에서 반도체 여인으로서 첫걸음을 내디딘 서애정씨는 풋풋했던 첫 출근의 기억을 더듬었습니다.
“처음 기흥공장에 출근하던 날을 잊을 수가 없어요. 출근을 위해 버스를 기다리는데, 벚꽃이 정말 예뻤어요. 그러다가 버스를 탔는데 정말 끝도 없이 산골짜기로 들어가더라고요. ‘아! 도대체 날 데리고 어디로 가는 거지?’하고 좀 무섭다는 생각까지 들더라고요”
“기숙사 생활을 했는데 밖에 아무것도 없으니 외출은 생각조차 하지 않았죠. 일하는 것도 자는 것도 노는 것도 전부 회사 안에서 했었죠. 그러다 보니 상사, 동료 구분 없이 가족 같은 분위기였어요. 심지어 사장님도 오퍼레이터 여사원들의 이름을 대부분 외우실 정도였으니까요. 기흥은 그렇게 똘똘 뭉친 사업장이었죠.”
서애정씨와 같은 제조과에서 근무했던 최화련씨는 기억나는 추억으로 결혼을 선언하던 순간을 꼽았습니다. 007 첩보와 같았던 비밀 사내연애 후에 ‘우리 결혼해요~!’라며 깜짝 발표를 했다고 하는데요, 온 부서가 뒤집어지던 그 순간을 얘기하는 화련씨의 얼굴에는 미소가 떠나질 않았습니다.
“3년간 같은 부서에서 일하면서도 거의 대화해본 적이 없는 남자였어요. 그런데 친한 선배가 맞선을 주선한 거죠. 참 웃기지 않나요? 같은 부서 사람을 소개해준다는 게. 그렇게 만나고 비밀연애를 시작했죠. 시간이 흐르고 느닷없는 결혼 발표에 부서가 뒤집어졌죠. 그런데 요즘도 비밀연애하나요? 이제는 다들 당당하게 이야기할 것 같은데……”
“그 시절에는 결혼을 하면 회사를 그만두는 것이 일반적이었어요. 사회적인 분위기가 그랬죠. 그래서 팀원들이 더욱 놀라고 아쉬워했죠. 결혼의 기쁨도 있었지만 회사를 떠난다는 게 참 아쉬웠어요. 사실 1988년은 우리 반도체가 정말 최고의 실적으로 그 동안의 고생을 보상받은 한 해였거든요. 지금의 후배들은 참 부러워요. 결혼하고 나서도 자기 일을 할 수 있잖아요.”
초창기의 삼성전자 반도체 사업은 반도체 때문에 삼성그룹이 휘청거린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큰 폭의 적자를 기록했습니다. 하지만 1988년 본격화된 PC 보급으로 메모리반도체 대호황이 찾아 왔고, 삼성전자 반도체 사업은 그간의 누적적자를 모두 해소하는 역전의 한 해를 맞이했습니다.
이날 모인 사람들 중 가장 막내인 홍순덕 씨는 어려웠던 초창기 반도체 사업 이야기를 들으며 반도체 여인으로써의 자긍심을 말했습니다.
“길 가다가 삼성 TV나 전화기를 보면 왠지 미안하고 그랬어요. 가전에서 돈을 벌어서 반도체에 쏟아 붓는다는 이야기를 들었거든요. 그런데 신기하게도 누구 하나 기죽어 하는 사람이 없었어요. ‘무에서 유를 창조해낸다’, ‘나라를 위해 하는 일이다’ 어린 여자들이지만 자존감이 대단했었어요. 다른 계열사에서 반도체 여자들은 콧대가 높아서 싫다는 말이 돌았다고도 들었죠”
“’베스트 100’ 훈련이요? 가장 힘들었던 기억이죠. 지금은 에버랜드죠? 용인 자연농원에서 밤 9시에 출발해서 기흥까지 걸어오는 미션이었는데 정말 죽는 줄 알았어요. 도대체 이걸 왜 하나 싶더라고요. 근데 솔직히 그거 하니까 웬만한 것은 힘들다는 생각이 안 들긴 했어요. 정신무장이 제대로 된 거죠. 다시 하라고 하면 죽어도 못할 것 같아요. 하하”
1984년에 입사해 1992년 결혼으로 일을 그만두었다는 김운주 씨. 8년이라는 그리 길지 않은 시간이지만 강렬했던 그때의 기억은 여전히 마음에 남아있습니다. “사실 8년간의 회사생활을 끝내고 이제 삼성과는 상관없는 삶을 산 지도 벌써 25년이 다 돼 가지만 삼성반도체를 생각하면 아직도 내 새끼 같고 그래요. 뉴스에서 1등을 했네, 세계 최초로 뭘 했네, 하면 당연히 기분도 좋고 어깨가 으쓱하죠. 일종의 골수 팬이죠. 대부분 그럴걸요?”
회사를 그만두고 가사에 전념하던 김운주 씨는 소일거리로 삼성전자 가전매장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다며, 당시 에피소드를 들려줬습니다.
“삼성 전기밥통이 있었어요. 누가 그걸 사러 왔는데 삼성전자에 근무한다고 하며 구입하기 전에 밥통이 잘 되는지 테스트를 해달라고 하더군요. 자기가 만든 제품을 자기가 못 믿으면 누가 믿겠냐고 따졌죠. 일반 손님이라면 당연히 해드려야 하는데 직원이라는 말에 화가 나더라고요. 차장님이라고 했는데 머쓱해 하시더니 그냥 사 들고 가시더라고요.
이날 그녀들은 시종일관 밝은 표정으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옛 추억을 나누었습니다. 20년도 더 지난 일이지만 마치 어제 있었던 일인 듯 생생하게 기억하는 모습을 보니 그 시절의 열정을 짐작할 수 있었습니다.
이들은 언젠간 다시 사업장을 방문해서 새로 지은 1라인 건물을 꼭 한번 보고 싶다는 바램을 말하며 지금의 삼성전자 반도체 후배들에 대한 고마움과 당부도 잊지 않았습니다.
삼성전자 반도체가 세계 최고로 인정받고 있는 지금의 모습을 보면 정말 자랑스러워요. 삼성전자를 이렇게 멋지게 만들어 줘 후배들에게 정말 감사합니다. 늘 응원하겠습니다
김운주 님
요즘 한국 반도체가 위기라는 뉴스를 많이 봤어요. 그래도 걱정하지 않아요. 반도체는 정말 ‘위기극복’ 전문이거든요. 힘들어도 절대 포기하지 말고 이겨냈으면 합니다.
서애정 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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