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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도체 역사 기획, 삼성전자 반도체와 동행한 30년

삼성전자는 1992년 세계 최초로 64M D램 개발에 성공하며 D램 업계 1위에 올라선 이래 세계 D램 시장을 선도해왔습니다. 지난 2월에는 세계 최초로 10나노급 D램 양산에 성공하며 다시금 메모리 기술의 새 역사를 썼는데요. 압도적인 기술력으로 20년 넘게 세계 메모리 반도체 1위 자리를 유지하고 있는 삼성전자 반도체! 그 뒤에는 사업 초창기부터 열정과 뚝심으로 묵묵히 자신의 자리를 지킨 분들이 있습니다.

오늘은 30년이라는 긴 시간을 반도체 기술의 발전을 위해 노력해 온 메모리 T기술팀의 안현수 부장과 반도체연구소 연구라인운영팀 정호형 부장의 이야기를 여러분께 소개합니다!

■ 입사 30년 차 반도체 외길 인생이 말하는 삼성전자 반도체의 초창기 모습은?

삼성전자 반도체는 1974년 한국반도체를 인수하며 반도체 사업에 첫 발걸음을 뗐고, 1983년 12월 64K D램을 개발하며 본격적인 고집적 반도체 사업에 뛰어들었습니다. 그 바탕에는 반도체와 젊은 시절을 함께한 많은 임직원들이 있는데요.

오늘 인터뷰의 주인공인 안현수 부장과 정호형 부장 역시 그중 하나로, 1986년부터 현재까지 반도체 외길을 걸었습니다. 올해 입사 30주년을 맞아 삼성전자 반도체 사업의 어제와 오늘을 모두 경험한 그들에게 초창기 모습에 대해 물었습니다. 질문을 받은 정호형 부장은 준비한 과거 사진과 자료를 뒤적이며 그 시절을 추억했는데요.

반도체연구소 연구라인운영팀 정호형 부장

정호형 부장: “1986년 제가 입사할 당시에는 지금의 삼성전자 반도체의 모습과 정말 많은 것이 달랐습니다. 일단 대부분의 사람들이 반도체라는 단어조차 생소해했는데요. 당시 회사 명칭이 ‘삼성반도체통신’이었는데, 제가 반도체 회사에 다닌다고 하면 혁대 만드는 회사냐고 묻는 분도 있었죠.”

이처럼 과거 반도체 불모지에서 지금 세계 1위 자리에 우뚝 서기까지, 정호형 부장은 ‘반도체인의 신조’가 큰 힘이 됐다고 강조했는데요.

정호형 부장: “지금과 달리 30년 전에는 반도체가 적자 산업이었어요. 미국, 일본 등 선진국과의 격차가 10년 이상 났기 때문에, 그 격차를 줄여나가기 위해 저희들은 밤낮없이 일하곤 했죠. 당시 임직원들 모두 ‘큰 목표를 가져라’, ‘안 된다는 생각을 버려라’ 등 반도체인의 신조를 끝없이 되새기며 업무에 임했습니다.

그렇게 사업이 적자에서 흑자로 돌아서고, 1992년 9월 세계 최초로 64M D램을 개발하는 데 성공하며, 1993년 본격적인 사업 시작 10년 만에 메모리 반도체 세계 1위에 오르게 되었는데요. 그럴 때 회사에서 기념품도 받으며 분위기가 정말 좋았어요. 무엇보다 그 동안 임직원 모두가 함께 고생했던 시간을 보상받은 느낌이었죠.”

메모리 T기술팀의 안현수 부장

86년 당시 삼성반도체통신 부천 사업장으로 입사한 안현수 부장은 입문교육 사진을 보여주며 잠시 추억에 잠겼습니다. 당시 부천에서 A, B, C 라인을 모두 셋업하고 기흥 사업장으로 오게 된 그는 6라인 셋업에 힘을 보탰다고 하는데요. 그는 반도체 사업의 기틀을 다졌던 사명감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

▲ 1994년 5월, 삼성전자 반도체 기흥 사업장 6라인 셋업 당시 기념사진
▲ 1994년 5월, 삼성전자 반도체 기흥 사업장 6라인 셋업 당시 기념사진

안현수 부장: “기흥 사업장에서 6라인을 셋업할 당시, 임직원 모두가 정말 열심히 했습니다. 오전 7시에 출근하고 밤 10시 퇴근이 일상이었지만, 라인을 셋업한다는 사명감이 있었기에 임직원들 모두가 하나로 똘똘 뭉칠 수 있었습니다. 세계 최고가 되겠다는 목표를 가지고 밤낮없이 일하다 보니 가족들의 불만도 있었죠. 하지만, 열정을 다해 일하는 제 모습을 보고 가족들도 많이 이해를 해줬던 것 같아요.”

추억에 잠겨있던 안현수 부장 역시 당시 힘든 상황 속에서도 목표를 향해 끝없이 전진할 수 있었던 이유로 ‘반도체인의 신조’를 꼽았습니다.

안현수 부장: “그 당시 우리 주변에는 늘 반도체인의 신조가 있었어요. 사업 초창기에는 삼성전자 반도체가 업계 리더가 아니었기에, 위로 올라가기 위해 모든 부서원들이 반도체인의 신조를 몸과 마음에 새기며 일했죠. ‘일에 착수하면 물고 늘어져라’, ‘지나칠 정도로 정성을 다하라’ 등의 구호를 외치며, 포기하지 않고 열심히 했어요. 그러한 생각과 노력이 있었기에 지금의 자리에 올 수 있었던 것 같아요.”

▲ 2000년 512메가 D램 개발 기념 칩 내장 넥타이핀

■ 메탈의 장인, 안현수 부장! 삼성전자 반도체에서의 영광스러운 순간은?

안현수 부장은 86년 입사 이후 지금까지 30년 동안 메탈 공정 업무를 맡아 수행했습니다. 메탈 공정에 어려운 일이 발생할 때마다 해결사 역할을 톡톡히 해, 이제 그를 ‘메탈의 전설’이라고 해도 부족함이 없다는데요. 그에게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은 언제일까요?

메모리 T기술팀의 안현수 부장

안현수 부장: “저는 삼성전자에서 30년 동안 메탈 공정 업무를 했습니다. 업무를 하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은 6라인을 셋업하고 양산을 시작할 때 메탈 쪽에서 발생한 어려운 문제를 해결했던 것입니다.

당시 수율이 안 나와서 3개월이 넘는 시간을 애먹은 적이 있습니다. 오랜 시간 밤샘 작업으로 지쳐있었지만, 저와 제 동료는 포기하지 않고 수백 가지 방법을 끊임없이 시도했죠. 그러다 도저히 안되겠기에 차라리 완전히 새로운 방법을 시도했습니다. 그랬더니 수율과 가동률이 눈에 띄게 오르며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어요. 반도체인의 신조처럼 끝까지 물고 늘어진 결과였죠. 덕분에 당시 후배들에게 메탈의 전설이라는 영광스러운 별명을 선물 받기도 했습니다. 아직도 그 짜릿했던 순간이 잊혀지지 않아요.”


■ TPM 페이스메이커, 정호형 부장! 긴 회사생활 동안 가장 기억나는 순간은?

1986년도에 입사한 정호형 부장은 반도체연구소에서만 쭉 근무했습니다. 그는 연구소에서 테스트를 하며 늘 한 발 먼저 제품을 접했는데요. 1992년도 64메가 D램으로 세계를 제패했던 순간부터 10나노급 D램을 양산하는 지금까지, 그의 손을 거치지 않은 제품이 없습니다.

반도체연구소 연구라인운영팀 정호형 부장

그런 그에게 회사생활 동안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을 물었는데요. 단 번에 TPM의 모든 스텝을 끝냈던 순간을 꼽았습니다. TPM은 Total Productivity Maintenance의 약자로 종합 생산성 향상을 위한 혁신활동 중 하나인데요. TPM의 페이스메이커였던 그의 이야기를 들어볼까요?

▲ TPM 6STEP 진행 중 분임조원들과 함께 한 정호형 부장의 신우회보 인터뷰 기사
▲ TPM 6STEP 진행 중 분임조원들과 함께 한 정호형 부장의 신우회보 인터뷰 기사

정호형 부장: “과거 우리 회사에 6시그마가 있기 전, TPM이라는 혁신활동이 있었어요. 그 당시 TPM은 총 7스텝까지 있었는데, 한 스텝 끝내는 데 6~12개월 정도 걸리는 쉽지 않은 일이었습니다. 당시 TPM을 끝까지 끝낸 사람이 없기 때문에 누군가 한 명은 꼭 먼저 나서 정답을 만들어 나가야 했습니다.

당시 저는 TPM 페이스메이커로 약 5년 여의 시간에 걸쳐 TPM의 모든 스텝을 마무리 한 유일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때 제가 5년 동안 진행하면서, 너무 힘들어서 매너리즘에 빠지기도 했는데 당시 기술혁신팀 리더였던 TPM사무국 부장님과 이를 함께 수행한 분임조원들이 있어서 마무리할 수 있었죠. 시간은 많이 흘렀지만 그때의 기억 하나하나가 생생하게 남아있습니다.”

▲ 정호형 부장과 분임조 동료들의 롤링 페이퍼
▲ 정호형 부장과 분임조 동료들의 롤링 페이퍼


■ 삼성전자 반도체 역사의 산증인! 그들의 곁을 지켜준 가족 같은 동료들

삼성전자 반도체의 역사를 몸소 체험한 안현수 부장과 정호형 부장. 그들은 힘들고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지금까지 올 수 있었던 원동력으로 가족 같은 동료들을 꼽았습니다. 특히 정호형 부장은 반도체기술대학(현, 삼성전자공과대학)을 졸업했을 때, 동료들이 써준 편지를 꺼내며 그 어느 때보다 밝은 미소를 지어 보였는데요.

▲ 정호형 부장의 반도체기술대학 2기 졸업 후 기술대학원 합격 통지서와 동료들의 축하 편지
▲ 정호형 부장의 반도체기술대학 2기 졸업 후 기술대학원 합격 통지서와 동료들의 축하 편지

정호형 부장: “저는 회사에 입사하고 89년부터 사보기자 활동을 했습니다. 당시 저는 삼성 사내 기술대학을 졸업하고 대학원에 입학하게 되었는데요. 이를 알고 동료 사보기자들이 저에게 편지를 써주기도 했었습니다. 이처럼 당시에는 정말 동료들과 가족처럼 지냈어요. 지금 생각해보니 그 시절이 참 그립네요.”

안현수 부장 역시 당시 팀원들의 집들이 사진을 아직까지 보관하고 있었는데요. 깔끔하게 보관된 사진만큼 그날을 추억하는 그의 기억도 생생했습니다.

▲ 안현수 부장과 팀원들의 집들이 사진
▲ 안현수 부장과 팀원들의 집들이 사진

안현수 부장: “요즘은 회사 규모도 커지고 사회적으로도 많은 변화가 있어 사내 분위기가 과거와 많이 달라졌습니다. 제가 입사하고 회사생활을 했던 80년대 당시 팀원들과 정말 가깝게 지냈는데요. 가족들끼리도 알고 지내며 왕래를 할 정도였죠. 팀원들의 집들이에도 모두 함께 가 축하해주고 했었으니깐요. 직장동료를 넘어 모두가 가족이라고 해도 부족함이 없었기에 크고 작은 어려움도 이겨나갈 수 있었던 거 같아요.

■ 반도체와 동행한 30년, 그리고 내일

1993년부터 메모리 반도체 시장에서 세계 1위의 자리를 놓치지 않고 있는 삼성전자. 최근 10나노급 D램 양산을 통해 메모리 반도체 분야에서의 독주체제를 확고히 하고 있는데요. 뿐만 아니라 AP, 스마트카드IC, CMOS 이미지센서 등 시스템 반도체 분야에서도 장악력을 높여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안현수 부장은 인터뷰 내내 최고의 자리에 있다고 해서 안주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습니다.

안현수 부장: “우리가 지금 잘 되고 있다고 해서 너무 자신만만해서는 안됩니다. 누군가의 기술을 보고 쫓아갈 수 있었던 과거와는 달라요. 우리가 스스로 새로운 길을 개척해야 하는 상황입니다. 지금 들어오는 신입사원들이 삼성전자의 추진력이 되어서 삼성전자의 기술력과 창의력을 더욱 높일 수 있도록 저도 적극 도울 생각입니다. 제가 그동안 쌓아왔던 경험을 후배들에게 물려줄 수 있도록 노력해야죠.”

반도체연구소 연구라인운영팀 정호형 부장

정호형 부장 역시 후배들에게 보내는 당부의 말을 잊지 않았습니다.

정호형 부장: “우리가 메모리 반도체에서는 세계 1위를 유지하고 있지만, 오히려 지금이 더 불안한 시기라고 생각해요. 80점 맞던 사람이 90점을 맞았다고 안주하는 것이 아니라, 100점이 되기 위해 부족한 10점이 무엇인지 항상 고민해야 합니다.

이를 위해 후배들에게 ‘불파만 지파참(不怕慢, 只怕站)’이라는 말을 꼭 전해주고 싶습니다. ‘불파만 지파참’은 천천히 가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고 멈추는 것을 두려워하라는 뜻인데요. 앞으로 다가올 수많은 위기와 변화에도 흔들리지 않고 나아가 반도체 산업에 큰 획을 그을 수 있길 기원하겠습니다.”

이번 인터뷰를 통해 삼성전자에서 30년간 근무한 긴 세월을 돌아보는 시간이 된 것 같다는 안현수 부장과 정호형 부장! 마지막으로 그들에게 앞으로의 목표에 대해 물었습니다.

메모리 T기술팀의 안현수 부장

안현수 부장: “삼성전자 반도체에서 4인치부터 12인치 설비를 다 경험했고, 부천사업장과 기흥, 화성사업장의 6라인부터 17라인을 모두 해봤어요. 앞으로 제게 남은 꿈이 있다면, 평택에 가서 설비를 운영해보고 싶다는 것입니다. 부천, 기흥, 화성, 평택까지! 삼성전자 메모리 반도체를 다 돌아보는 사람이 되는 것이 제 꿈입니다.”

정호형 부장: “내가 회사에서 무얼 이루겠다는 생각보다, 가지고 있는 지식을 어떻게 더 많이 후배들에게 전달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는 시간을 가지고 싶습니다.”

인생의 절반 이상을 함께한 만큼 삼성전자 반도체에 대한 그들의 애정은 남달랐습니다. 누구보다 냉철하게 현실에 대해 고민하고 더 나은 미래를 위해 노력하는 모습에서 신입사원 못지않은 열정을 느낄 수 있었는데요. 최고를 향한 끊임없는 노력이 바로 지금의 삼성전자 반도체를 만든 저력이 아닐까요? 입사 30년을 맞아 반도체 역사 기획으로 만나본 안현수 부장과 정호형 부장, 늘 변함없는 그들의 멋진 모습에 박수를 보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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